당신이 준 것은 다정함이었습니다.
우리가 3번째 만나던 날, 당신 손에는 제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도 큰 망고가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인도네시아 롬복 공항으로 저는 당신을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다던 린자니 트레킹 투어를 예약했고, 당신은 손님인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종이를 들고 있을 건지, 짐을 찾고 게이트를 빠져나와 어떻게 찾아오면 되는지 아주 꼼꼼히 알려 준 당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국어를 꽤나 잘했습니다. 한국에서 몇 년 간 일을 했다 하셨죠. 말투와 단어에서 무엇을 예의라 강요받았는지 느껴져 불편함과 미안함이 올라왔지만 오랜만에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트레킹 투어를 안내해 줄 다른 이의 차에 올라타기까지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제가 피곤하지는 않은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두루두루 살피는 다정함 덕분에 긴 이동에 지쳤던 몸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이제 제게 해 줄 일은 끝났으니 그 이후로는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2박 3일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사야 할 물건이 있어 찾은 쇼핑몰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화산재가 군데군데 묻은 옷처럼 지친 기색이 덕지덕지 붙은 저는 남은 여행도 안전하길 바란다는 인사를 건네받고는 쇼핑몰에 들어섰습니다. 그때는 그저 기가 막히게 타이밍이 맞았다 싶었는데, 제가 곧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러 쇼핑몰을 찾은 손님을 내려주고는 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롬복에 있는 동안 저는 당신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트레킹 업체도, 쇼핑몰에 데려다준 택시기사도, 본섬 옆 작은 길리 트라왕안에 갈 때 탄 보트맨도 모두 당신의 친구들이었죠.
그런 당신은 손님을 데려다주러 작은 섬에 오며 무겁게 망고를 챙겨 왔습니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배를 타야 한다며 아쉬운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봉투를 들고 당신과 앉으려고 맡아 둔 자리로 돌아가니 망고 사러 갔다 온 거냐며 카페 직원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망고 하나 먹겠냐며 꽉 메어져 있던 끈을 풀었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이 망고는 Maga Madu(Honey Mango)로, 겉은 아직 초록빛이라 안 익은 것 같지만 무척 달고 맛있다는 것과 망고를 까는 새로운 방식을 배웠습니다. 그는 제가 길리 트라왕안에 머무는 내내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고, 그의 친구들도 기꺼이 제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를 아는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꽤나 마음 든든한 일이었죠.
망고 하나를 나눔 하고 아침에 맡겨 두었던 빨래를 찾으러 가서 세탁소를 소개해 준 아저씨와 옷들을 가지런히 개어 돌려준 아주머니께 각각 하나씩 감사의 표시로 망고를 드렸습니다. 오른손에는 망고가 한가득 담긴 봉투를, 왼손에는 옷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가는데 아저씨가 “Hey, friend!”하고 저를 부르시더니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잠깐 기다리라며 집으로 들어가시더니 꽃이 그려져 있는 분홍색 모자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거절할 수 없어 감사하다 인사하고는, 뜨거운 여름 옥상텃밭을 가꿀 때 써야겠다 생각하며 돌아섰지요.
숙소에 와서는 스태프들의 냉장고를 빌려 망고를 보관했습니다. 너무 많으니까 같이 나눠 먹자는 말도 빠트리지 않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 자신들의 아침을 사러 가면서 제 몫까지 사다 주었습니다. 이 날 함께 먹은 음식은 식당에 가서 자주 사 먹은 가도가도(gado-gado)였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주된 아침식사 메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손님의 물건이라 아무도 과일을 꺼내 먹지 않은 것 같던데, 어쩌다 보니 저는 맛난 식사 한 끼를 대접받았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건넨 상냥함으로 저 또한 다정함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저 당신에게 받은 망고 봉투를 열었을 뿐인데 말이죠. 그저 투어를 예약했을 뿐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