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처음을 함께 채워가기
엄마가 한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가던 날, 아침부터 "내 인생 처음 침 맞으러 가본다"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리에 침이 놓인 모습을 사진 찍어 카톡방에 올렸죠. '귀엽네, 우리 엄마'하고 미소를 짓고는 '처음'이란 단어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일본어능력시험을 보러 다른 지역에 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왠지 설레었습니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내 인생에 아직 처음이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재미있더라고요. 사실 처음인 경험은 도처에 널려 있지요.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가보는 길, 처음 배워보는 것. 그런 것에 일부러 '처음이네'하고 이름 붙여주니 인생이 조금 더 반짝이고 설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나의 '처음'을 하나씩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벌써 몇 개의 처음이 있었습니다. 헬스 PT를 받은 것도 처음, 탈색을 시도해 본 것도 처음, 5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을 해 본 것도 처음, 하루 종일 놀이동산에서 놀아본 것도 처음이었지요.
이런 저의 처음은 반짝임과 설렘이었다면, 엄마의 처음은 왠지 모를 서글픔이 함께 묻어납니다. 어릴 적에도, 나이가 들어서도 늘 가족을 위해 늘 자신을 뒤로 미루어 오던 엄마. 좋은 옷보다는 길에서 골라낸 저렴한 물건이 익숙하던 엄마가 폐 섬유증과 약 부작용으로 점점 몸이 약해지면서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아파도 참는 것이 익숙하던 엄마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몸에 좋다는 것들을 하나, 둘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따금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데 내 인생에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한탄하기도 하지만 지금껏 미뤄온 경험들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남이섬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새어 나온 엄마의 아쉬움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이번 여름 함께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다음에는 또 어딜 같이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신발장 가득 들어차있던 싸구려 신발들은 쓰레기통으로 사라지고 조금 더 발이 편한 신발로 채워져 가는 중입니다.
이렇게 엄마의 '처음'이 비로소 조금씩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엄마의 처음을 함께 잘 채워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2025년 '처음'은 무엇이었나요?
초록채집가 반나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기록이 되기를 바라며
글이 좋았다면, 저의 다른 기록들도 구경해 보세요.
브런치 | 일상의 위안이 되는 순간을 모아 설렘을 전합니다.
https://brunch.co.kr/@bansoonmi#works
블로그 | 여행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https://blog.naver.com/ban_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