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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 Mar 19. 2022

해파랑8, 구룡반취의 지세가 맺힌 땅







이틀째 봄비다.

난데없이 강원도는 72cm의 폭설이 쏟아졌다.

잠깐 고민하다 짐을 꾸렸다.

염포산 입구까지만 픽업하겠다던 아내가

우비를 덮어쓰고 따라나섰다.     

봄비는 대지를 두드린다.

내린다가 아니라 두드린다는 표현이 딱 맞다.

언 땅을 두드리고 굳은 나무와 줄기를 두드린다.

반응은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아주 느리게 물든다.

비가 한번 내릴 때마다 물기가 설핏 

연두로 맺힌다.

바로 그 풍경을 적시며 염포산에 올랐다.     












              

울산대교다.

여기에 서니 참 울산이 오묘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울산은 동쪽 무룡산부터 

서쪽 문수산까지 한반도의 광활한 산자락이 동해로 뻗어가는 종착지다. 

그 산세에 굽이친 다섯 자락의 강이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가히 비경이다.      

그 모습이 구룡이다. 

풍수로 보면 울산은 태백산맥이 남진하는 중에 

험한 기를 벗어 버리고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다. 

청도 운문산으로 내려온 태백산맥이 

한 줄기는 경주의 금오산을 만들고 

남쪽으로 내려와 울산의 주산인 함월산을 만들었다. 

무룡산은 울산의 좌청룡으로 천연의 항구인 울산만을 만들었고 

운문산에서 정족산을 거쳐 문수산으로 이어진 맥은 

울산의 백호가 되어 태화강 남쪽에서 울산을 감싸고 있다.      

그 형상이 아홉 마리 용이 동해로 뻗어가는 기세로

구룡반취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홉 마리 용이 주안상을 받아 들고 있는 모습이다.      

해안가 울산공단은 청룡과 백호가 

여러 겹으로 감싼 채 금빛 소반에 음식을 가득 차려놓은 모습이고 

앞은 시원하게 터져 미래를 향한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땅이다.                                         










울산대교를 지나면 화정천내봉수대를 만난다.

고려조부터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던 봉수대 가운데 핵심이다.      

조선조 정조 때 별장 1인이 봉졸 100명을 배치하여 

바다로부터의 침략을 경계한 곳으로 봉수대로는 드물게 유구도 나왔지만

문화재청은 가치가 없다고 문화재 지정을 외면했다.     

봉수(烽燧)는 근대적 통신수단이 발달되기 전까지는 

중요한 국가적 통신수단이었다.      

해발 120m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천내봉수대는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리산(加里山)에서 봉수를 받아 

남목(南木 : 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해주는 연변봉수이다.                                   












방어진이다. 

울산에서 방어진은 외딴섬 같은 존재였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방어진 출장소가 동구로 승격한 이후에도 

울산 동구는 늘 방어진으로 통했다. 

지금도 여전히 동구는 방어진이고 방어진은 동구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방어진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질펀한 바다 냄새와 고기잡이배, 

왁짜한 어민들의 육감적인 말투가 

어촌 풍경을 그려내는 곳이 방어진이다.     

와딴섬 같은 방어진의 본모습은 

속살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하늘에서 버라본 방어진은 백두대간의 끝자락, 

옹골찬 산세가 동해로 달려가는 활짝 펼쳐진 형상이다. 

마치 영험한 대륙의 기운이 

바다를 향해 위세를 떨치는 장엄한 모습이다.     

그래서 방어진 일대는 천하절경이 즐비하다. 

대륙의 옹골찬 기운이 동해로 뻗어나가는 끝자락에 

대왕암 공원이 있고 

살짝 돌아선 곳이 일산진이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들어섰지만 

이 일대는 신라 천년의 경승지로 역대 왕들의 여름별장 같은 영험한 땅이었다.

그 끝자락이 슬도다.

가만히 파도소리에 몰입하면 

갯바위 스치는 현의 소리가 거문고 한자락으로 되살아나는 해변이다.







          





대왕암공원을 옆으로 끼고 돌면 

은빛을 드러내는 일산진이 나온다. 오늘 걷는 해파랑 8코스의 마지막 지점이다.

일산이라는 이름 역시 신라 때 

이곳으로 유람 온 왕이 일산(日傘)을 펼쳐놓고 

즐겼다는데서 비롯된 것인데, 

뒤에 일산(日山)으로 변했다고 한다. 

일산진 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바위섬이 있다. 

민섬, 혹은 미인섬으로 불리는 이 섬은 신라 때 

왕실에서 궁녀들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됐다. 

그 모습이 마치 꽃놀이 하는 것 같다고 

부르게 된 이름이 '화진'이다.           

지금의 일산진은 해수욕장과 위락시설로 변모했지만

천년전 오래고 화려한 이야기들은 모래알처럼 반짝거린다.

봄비와 함께 한 해파랑길 8코스는 

시작보다 끝이 두근거리는 길이다.


8코스가 끝날지점에서 봄비가 완전히 그쳤다

이제 동해의 등줄기를 따라가는 본격 해파랑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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