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하얀 대문에 달린 편지함에 검은 봉투를 넣으려 했다. 그때 마침 대문이 열리며 안에서 노인 한분이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어르신.” 노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노인은 시선을 피하듯 ‘예’라고 간단히 대답하고는 노아를 지나쳐 가려하였다.
“잠시 뭐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노아는 노인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노인은 놀란 듯 노아를 보며 말했다.
“어떤 것을요?”
“아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혹시 이 봉투에 쓰인 성함을 가지신 분을 알고 계십니까?” 노아는 검은 봉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노인은 경계 어린 눈초리로 노아를 보며 대답했다.
“네. 접니다.”
“아 그러시군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 지역 우편배달을 담당하다 보니 이 검은 봉투를 매번 배달하게 되는데, 혹여나 본인이 수령하지 못하고 있을까 걱정되어서 여쭤봤습니다.” 노아는 멋쩍게 웃으며 노인에게 봉투를 건넸다. “저 일과는 상관없는 질문입니다만, 전에는 청년 한분이 살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아드님이나 손자분이신가요?”
노인은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노아를 보며 대답했다.
“계속 저 혼자 살았습니다. 저는 결혼도 안 했고, 따라서 자녀도 없습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지나가겠습니다.”
노인은 봉투를 손에 들고 노아를 지나쳤다.
노아는 오토바이를 반납하려 우체국에 들렀다. 주차장에는 염병 아저씨가 오토바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타이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먼저 오셨네요?”
“어, 이제 오냐. 옘병.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지 오토바이가 왜 이리 덜컹거리는지 모르겠어.”
“어디 봐요.”
노아는 염병 아저씨 옆에 함께 쭈그리고 앉았다.
“옘병. 보면 뭘 알긴 알아?”
“잘 모르지만. 둘이 같이 보면 혼자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녀석. 능글맞긴.” 염병 아저씨는 싫지 않은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여 타이어에 눈을 가져다 댔다.
“아무래도 타이어에는 이상이 없는 거 같죠?”
한참이나 쪼그려 있다가 노아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러게. 오토바이 문제인가 봐. 그럴만하지 10년을 넘게 탔으니.” 염병 아저씨는 고개를 위로 들어 목을 풀며 말했다. “에그그 목이야. 옘병. 사람이나 오토바이나 나이가 문제구먼.”
“사람 쪽은 고쳐 쓰면 문제없겠어요.” 노아는 웃으며 말했다.
“녀석.” 염병 아저씨도 함께 웃었다. “시간은 악한 것이야. 살아보니 시간만큼 악한 게 없어. 옘병. 너도 젊을 때 이것저것 많이 해놔.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말고.”
“뭐가 후회되시는데요?”
“그냥. 이것저것 다. 좀 더 놀러 다닐걸. 좀 더 열심히 해볼걸. 좀 더 잘해줄걸. 이런 것들이지 뭐. 옘병. 내가 별소릴.” 염병 아저씨는 머쓱한지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아직 안 늦으셨어요. 지금이라도 놀러 다니세요.”
“옘병. 돈 안 벌고 놀러 다니면 밥은 나라에서 준다니?”
“가끔 연락하세요. 한 끼 정도는 사드릴 수 있으니까.” 노아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옘병.”
둘은 한참 동안 낄낄대며 웃었다. 염병 아저씨는 오토바이 옆 작은 계단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아도 옆에 앉아 같은 쪽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아스팔트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지는 해는 어쩐지 빠르게 숨어버리는 것 같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져서는.
“시간은 악한 것이야...” 염병 아저씨는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노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