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날이 추워졌다. 노아는 목까지 올라오는 점퍼를 입고 낮 병원에 왔다.
“노아. 창고에 가서 삽을 좀 가져다줄래요?”
봉사자 담당 선생님의 부탁에 노아는 창고로 향하기 위해 병원 복도를 지났다. 병원 복도에선 할머니 한분이 위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도 할머니, 왜 또 울고 계세요?” 노아는 미소를 띤 채 물었다.
기도 할머니는 노아에게 잠시 시선을 준 뒤, 손가락으로 전등을 가리켰다.
“전등이요?” 노아도 전등을 보았다. 전등은 수명을 다한 듯 힘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기도 할머니는 원래 용한 무당이었다고 한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애초에 이곳에선 서로의 과거를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의 현재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낮 병원은 어쩌면 껍데기들만 모여 있는 곳 일수도 있다. 노아는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실이라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느리고 여유롭기 때문에.
“갈 때가 되었나 보네요.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교체해야겠어요.”
기도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노아는 잠시 할머니의 어깨를 토닥인 뒤 창고로 향했다.
“무슨 일 있어?”
노아는 오늘따라 유독 창의 표정이 어둡고 피곤해 보인다고 느꼈다. 피부가 푸석해 보이고 눈 밑이 검게 보였다.
“잠을 좀 못 자서. 며칠은 늙은 기분이야.” 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쩐지 힘겨워 보이는 미소였다.
“며칠을 늙었다는 건 처음 듣는 표현인데?”
“사실인걸.”
“고민거리라도 있어?”
창은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오래전에 만났던 친구가 있었어.”
“여자친구?” 노아는 눈이 커지며 물었지만 창은 노아에게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최근에 계속 연락이 왔는데, 도저히 만날 수 없어서 무시해 왔거든. 근데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 전에 집을 찾아왔더라.”
“왜 만날 수가 없어? 싫어서?”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럼 왜?”
“음.” 창은 고개를 숙이더니 생각에 잠겼다. 노아는 참을성 있게 창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더니 창이 침묵을 깼다.
“너무 늙었거든. 내가.”
“뭐야. 싱겁게.” 노아는 김 빠진 듯 대답했다. 웃으며 창을 쳐다봤지만 창은 웃고 있지 않았다.
“형 아직 어려. 게다가 나이 먹었어도 둘이 똑같이 먹었을 텐데 뭘.”
창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렇지 않아.라고 작게 속삭인 것 같기도 했다.
“뭐야 설마. 고등학생이라도 만나는 거야?” 노아는 눈이 커지며 창을 추궁했다.
“무슨 소리야. 아니야. 그런 거.” 창은 실소를 내비치며 대답했다. 여전히 힘겨워 보이는 웃음이었다.
“다행이다. 실망할 뻔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노아는 분위기를 살피며 애써 유쾌하게 물었다.
“지난번엔 너무 놀라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그대로 보냈어. 오는 주에 다시 만나기로 했어.”
“별일이네. 그 정도 일로 이렇게나 고민에 빠지다니.”
“그러게.”
노아는 창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무슨 이야기를 더할까 싶어. 그러나 창은 아무 말도 없었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는 거지? 좋아. 비밀로 하고 싶다면 캐묻지 않을게. 그래도 다음 주엔 꼭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줬으면 해.”
창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그날이 창을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다음 주말 낮 병원에 갔을 때 노아는 창의 장례소식을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