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동그란 눈, 흰색 셔츠에 무채색 니트 조끼, 검은색 슬랙스, 흰색 운동화. 가까이에서 보면 조금씩은 달라 보이지만 내가 면접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면접 때문일까 쑥스럽고 어색한 얼굴 표정만은 모두 하나다. 그 얼굴 표정을 보고 있자면 코끝이 찡하다. 얼굴만 봐도 이 상황이 얼마나 긴장되고 불편한지 짐작이 간다.
수험생에게 면접만큼 긴장되는 시험도 없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갖고 있으며,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이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면접관을 만나게 될지, 무슨 질문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면접 상황은 정말이지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면접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수험생 입장에서 면접이야 말로 자신이 합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재라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렇기에 면접은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된다.
수험생에 비하면 숙련된 면접관의 긴장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 물론 처음 면접관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나도 입학사정관으로 입직하고 그 해 면접관으로 처음 수험생을 마주했을 때, 수험생보다 더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내 심장소리가 들려서 더 떨렸다. 학생의 답변을 듣고 반응하기보다는 준비한 질문을 기계처럼 읊조렸다. 긴장한 모습을 수험생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미소를 짓다가 얼굴에 경련이 나기도 했다. 내 노력과는 별개로 평소보다 말을 더 빠르게 하는 나를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수시로 마주했다.
입학사정관으로 입직한 지 어느덧 12년. 지나온 시간이 무색하게 면접은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한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따위의 문구는 평가준거에 쓰여 있을 뿐.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착잡하다. 면접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배정된 면접이 모두 끝나고 나면 나는 습관처럼 고사장의 책상을 쓱 문지른다.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던 순간을 아쉬워하고, 기껏 주의를 기울였던 순간도 고사장 구석의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책한다. 학생들의 노력을, 열정을, 상상을 다 껴안지 못한 나의 작은 가슴을 자책한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학생들의 상상을 껴안는 일이 대체 가능한 일인지? 자문한다.
처음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장면을 떠올려보면, 면접평가요소와 평가준거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측정하고자 하는 역량과 관련된 행동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질문을 구성했는지? 편견을 배제하고 지원자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등 평가를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긴장이 됐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이 걱정이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면접을 통해 지원자에 대해 알고 싶은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학생이 지원한 전공에 충실할 것인가? 두 번째는 성장가능성이 충분히 있는가?이다.
면접을 통해 대입전형자료에 나와 있는 교과 성적 등으로 미루어 알 수 없는 개인적인 것들을 확인한다. 대학입시 장면에서, 면접의 목적은 지원자의 고등학교 3년 동안의 학교 활동을 통해 우리 대학에, 우리 학과에 적합한 인재인가를 확인하고 더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있다. 지원자가 학교 활동을 통해 학습경험을 어떻게 확장해 왔는지, 대학 수학을 위한 기초 체력(학업역량)을 어떠한 형태로 구축해 왔는지, 그 깊이는 어떠한지 등을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와 비교과 내용을 토대로 확인하는 작업이 면접이다.
면접은 지원자의 상황(교과/비교과 활동)을 통한 성장의 정도를 파악하고. 그 상황에 대해 지원자가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확장해왔고, 그 경험을 통해 사고의 깊이를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확인 과정을 통해 면접평가 준거에 근거하여 지원자가 갖추고 있는 역량을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 과정을 통해 더 적합한 인재를 선발한다.
그렇다면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면접 질문이다. 왜냐하면 질문을 통해 학생의 역량을 확인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제출서류 기반 면접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재 면접방식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학생의 고등학교 장면에서의 특정 상황이나 장면을 상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해야 측정하고자 하는 역량을 확인하기가 수월하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 상황에서 지원자가 어떻게 행동을 취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이후 학생은 어떤 행동을 취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등등.
여기에 더해 면접관은 객관성을 유지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평가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의 반응에 경청하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상상을 함께 상상하는 것이 먼저다. 학생이 대학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은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등을 질문을 통해 그려내야 한다. 읽어내야 한다. 면접 체계, 면접 방식, 평가 기준, 면접 질문 등이 모두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면접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차가운 머리로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뜨거운 가슴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봐야 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