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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일춘 Oct 21. 2021

결국 나 자신의 자리다


"둔둔둔 굿모닝

둔둔둔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굿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굿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뷰리플데이

빠빠빠빠 잇츠 뷰리플데이 둔둔둔"      

    

토요일 아침. 지줄대는 알람 소리에 단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7시 30분이다. 평상시 같으면 10시가 훌쩍 지나도 잠자리에서 뭉개고 있을 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글쓰기 모임 문우들과 함께 불암산 입산(入山)하기로 약속한 날이라 단박에 잠이 깼다.     


간단히 세면을 하고 집을 나섰다. 1차 모임 장소인 책방에는 문우들이 이미 다 와있었다. 차 한 대에 옮겨 타 불암산 부근의 해장국집을 먼저 들렀다. 입산에 앞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기로 했다. 선지 해장국을 아귀아귀 먹고 커피 한잔을 더했다. 배도 든든하니 꽤가 생겨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그것도 잠시, 불암산 입산을 위해 지난 한 달 동안 해발 128m의 황금산을 오르락내리락했던 터라 오늘이 기다려졌던 참이다. 날 선 산길, 열정이라는 뜨거운 걸음으로 누벼보리라 다짐도 했었다. 오늘 그 열정과 의지를 시험하는 길 위에 나를 몰아세워본다.         

 



길이 험하다는 문우의 말에 등산화 끈과 마음을 단단히 메고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걸음은 이제 막 시작 일뿐인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마주한다. 지난 한 달 동안 기초체력을 다진 것을 비웃는 듯하여 오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그 오기도 잠시, 초반부터 거칠게 몰아붙이는 길에 온몸의 신경이 바짝 긴장한다. 불암산은 자신의 진면목을 거저 내어주기 싫은 양,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골이 깊어질수록 크고 작은 돌들이 들쭉날쭉 쌓여 계단이 된다. 웅장한 기암괴석과 창울한 숲 앞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멋들어지고 어마어마한 만큼 오르기 힘들다는 엄연한 사실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휘적휘적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중간중간 사람들 발길을 제한한다는 표지가 눈에 띈다. 사람이 좀 물러나서 자연을 배려해야 하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터. 사람과 자연 사이 아름다운 거리를 둘 때, 비로소 불암산도 본연의 모습을 선물해주겠지. 사람과 자연의 거리두기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오죽할까?

          

불암산은 이제 여름 초입에 접어들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반드시 찾아오듯 우리네 삶도 그러하겠지. 누구에게나, 언제나 위로가 되는 그 계절을 기다리며 나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오르면 오를수록 길은 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가파르게 일어선다. 여기저기 칼날처럼 날이 선 바위 길 위에 거친 숨을 몰아쉰다. 턱밑까지 숨이 차올라 마냥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수차례. 애면글면 능선 위에 올라선다.      


열심히 올라왔나 싶었는데 길은 다시 곤두박질친다. 바닥까지 치 닿더니 솟구쳐 오른다. 그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두릿두릿 주위를 살펴봐도 빠져나올 곳이 없다. 나아가거나 아니면 되돌아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우리네 인생과 맞닿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다시 허위허위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선다.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다짐을 되새긴다.     




험준한 바위를 지나야 마주할 수 있는 정상. 하늘과 땅 사이에 그려놓은 풍광명미(風光明媚)가 지친 걸음에 힘을 북돋는다. 허위단심 정상에 오르니 성취감은 그 어디 비길 데가 없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극도의 고통도 견디며 걷는 건 아마도 산 아래 펼쳐진 너른 풍경을 담을 수 있다는 이 희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막힌 데가 없이 활짝 트여 마음이 후련하니 홀연 신선이 된듯하다.      

    

호연지기의 끝, 무언가에 쫓겨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그저 살아내고만 말았던 시간들을 마주한다. 불혹이 되면 고민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매번 산을 넘는 기분이다. 이 긴 산행의 목적지는 결국 나 자신의 자리다. 다시 나를 마주하는 시간. 불암산은 푸릇푸릇하고, 햇살은 도탑고 길다.  

        

산을 오르며 / 정연복     


우람한 산 앞에 서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작은가!     

겸허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가끔은 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아직도 많이 설익은 나의 인생살이를

산은 말없이 가르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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