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아이를 데리고 갈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면..
보통 엄마들은 내 아이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 육아의 정답을 찾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유아기 아이들은 자기주장을 넘어 반항과 같은 행동을 하기에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하게 된다. 이런 아이 앞에서 훈육을 해야 할까? 아니면 기다려주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고민은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유아기의 반항은 사춘기와 또 다른 행동이라고 말한다. 사춘기는 호르몬으로 인해 충동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유아기에는 아이들이 자기주장이 생겨나면서 엄마, 아빠 즉 편안한 상대 앞에서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 시기의 감정은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하거나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고, 나만의 방식을 주장하고 싶어 한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라지만 자기를 지키려는 방어기제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언제 힘들어하는지 잘 안다.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를 쓰고 보채게 되면 결국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엄마가 흔쾌히 허락한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줄 때가 더 많다. 그렇다면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은 어떤가?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떨구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때 아이의 표정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때 아이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다음에는 마트에 데려가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했을지 모른다. 무언가를 사달라고 할까 봐 아이와 마트 가는 것을 포기하겠다니, 너무 큰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두 갈래 길에 놓인다. 이것을 하자니, 다른 것을 포기 못하겠다. 그러나 두 가지 다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항상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함께 장을 보며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고민하는 것보다 편하게 엄마 혼자 장을 보고 들어가겠다는 다짐이 선다. 마트를 예로 들었지만, 어느 순간이든 아이와 함께하는 상황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나에게 맞는 육아법을 찾기보다는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다고 생각된다면 그 방법이 맞는 것이다. 그 선택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에게 맞는 육아법은 찾기 힘들다. 즉 육아는 엄마 혼자서 하는 게 아닌,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가는 하나의 삶의 과정이다. 아이를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엄마와 아이의 육아법을 찾아갈 수 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아이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말이다. 본질 육아, 취향 육아, 내향 육아, 바라봄 육아 … 최근에는 다양한 육아법이 정의되어 나온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모두 아이와의 소통이 육아법의 본질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바라보지 않고는 결코 아이를 알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