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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다 Oct 21. 2023

내가 7년 동안 빠진 연애

나에 대한 이해 없이 했던 7년 장기 연애의 결론

(2023년 1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20대의 마지막 날에서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뭔가 어른으로 규정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 당시 오랜 기간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진정한 독립’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결혼, 집, 아이, 일. 이 네 박자를 고루 갖춘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어른이 되어 내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숙제로 느껴왔던 (한국) 어른의 모습으로 레벨 업하는 것을 서른 초반의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작년 초,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계기로 내가 준비해 온 어른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당시 남자친구는 7년 넘게 만나오던 사람으로,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와 성향이 많이 달랐던 탓이었을까. 그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가 편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나는 그에게 이해받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 그런 와중에 그와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기반 없이 쌓은 애정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의 행복이 배제된 연애’는 ‘결혼’이라는 현실을 통과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7년의 장기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몰입하여 살아왔다. 나는 나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어 갈지 고민했다. 내가 아닌 그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그와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별 후, 내 인생에서 그가 빠져나갔다. 그 결과, 7년의 장기연애 끝에 남은 것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어른 아이’였다. 


 이후 다시 연애를 시작해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마음은 외면한 채로 나를 행복하게 해 줄 만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앞선 연애의 실패가 ‘상대가 나빠서’라고 생각한 나는 ‘착한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나의 생각, 마음을 편하게 터놓음과 동시에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착한 사람도 다음의 말을 끝으로 나에게 안녕을 고했다.


“너는 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 너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것 같아.”


 그제야 나는 나의 연애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나에게 관심이 없고 상대에게만 집중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상대가 주는 애정’으로 나의 가치를 확인했던 것 같다. 스스로 찾은 만족감보다 타인에게서 받는 사랑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 상대가 내가 부러워하는 요소(스마트한 직장, 수려한 외모, 활발한 성격 등)를 가지고 있을 때 더 강렬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로부터 받는 수동적인 사랑에 집착했다. 결국 나는 어느새 상대에게 항상 맞춰주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연애를 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상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본연의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이 떠날 것 같아 두려웠다. 그 결과 어느 순간부터 말을 삼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솔직하지 못하면서 사랑은 받고 싶어 하는 애매모호한 상황 속에서 나는 조급해졌다. 하루빨리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관계를 규정하고자 했던 것 같다. 7년의 연애에는 ‘결혼’을, 소개팅에는 ‘사귐’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스스로 나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멋진 커리어를 쌓으면 그러한 욕구가 해소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직을 하기 위해 퇴근 후 스터디 카페를 오가며 자기 계발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금세 공허해졌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위치로 올라간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질까?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 서른에 행복을 찾아 떠난 길 위에서 만난 희망


 정답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시도해 보았다. 등산, 독서, 스노우보드 등 평소에 관심을 가지던 것들을 해봄으로써 나의 취향을 알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글쓰기 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갔다. 차츰 그 흐름 속에서 나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났다. 나는 너무 평범해서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나의 일상을 어느새 ‘잘 살고 싶었던 2022년’, ‘도전이 가득한 평범한 30대’, ‘숨 쉬는 것과 같은 외로움’ 등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키보드 위에서 한참 동안 방황하던 손가락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는 입으로 번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나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요즘 나는 다시 소개팅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 아직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때 나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거절당할까 봐 겁이 나는 마음도 여전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어렵지 않다. 비록 너무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 최근 소개팅에서도 뻥 차였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 편안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좋아할 예정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나로서 살다 보면 이런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까.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그 사람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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