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밸런스 게임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매우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총 9년 동안의 의무교육을 받는데, 보통 한 학급 인원을 40명이라고 보면 총 300명 이상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후에도 고등학교, 대학교, 학원, 직장, 등등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수 백 명 혹은 수 천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렇지만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만나왔던 사람들의 과반수가 스쳐 지나갔다. 그중 몇몇과의 관계는 너무나 버거워서 내가 먼저 놓아버렸다. 그 연(緣)이 남긴 흔적은 꽤 진해서 완전히 지워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그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일초의 고민도 없이 선택을 하는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오래갈 수 없었다.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그들의 잣대로 나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간혹 내가 그들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솔직함을 가장한 비난과 무시가 돌아왔다. 어렸던 나는 그 가시 같은 말들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춰 나를 바꾸려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가끔씩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교 동아리 친구 A와 관련된 기억이다. A는 매사 똑 부러졌던 아이로, 야무지게 똑똑한 그녀를 나는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그랬던 만큼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많이도 흔들렸었다. 평생 갈 것 같던 A와의 관계는 아래의 말들로 인해 오래 안 가 끊기고 말았다.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말을 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너는 참 세상을 편하게 산다.”
“돌끼리 부딪힌다고 뭐가 나오냐? 너네끼리 궁리해서 답 안 나와.”
웃자고 한 말들이었을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여차하면 장난이라는 감투를 써버리는 그 무례한 말들은 내 마음 깊이 남았다. 그녀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나는 자꾸만 움츠려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녀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채점하고 있었다.
인간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저울과 같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접시의 추를 빼고 더해가며 상대방과의 균형을 맞춘다. 종종 본인 접시의 추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균형이 맞지 않은 그들의 저울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나의 저울을 갈고닦기로 마음먹었다. 나만의 정답을 세우되, 그것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만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