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지 8년이 지난 지금, 네가 내 꿈에 나오는 이유
안녕. 참 오랜만이네. 너랑 헤어진 지도 벌써 8년이 지났어. 10년이 다 되어가네. 신기하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부치지 못할 편지야. 대상을 누구로 할까 좀 고민하다가 너가 생각났어. 사실 그리 많은 시간을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왜냐하면 올해 들어 너가 꿈에 종종 나왔었거든.
참 신기한 일이지. 너랑 헤어진 직후에도 이렇게 꿈에 나오지 않았었는데. 그 당시 기억이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닌데 왜 좋은 연애가 하고 싶은 지금 너가 꿈에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가. 연애초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 같던 사람이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 배신감이 정말 컸거든. 그 끝은 그렇게 괴로웠는데 왜 요즘 들어 너가 자꾸 생각나는 걸까?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꿈에 나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너와의 연애가 나한테 좋게 기억돼서 그런가 봐. 그 연애는 스무 살 특유의 풋풋함과 달달함으로 가득했으니까.
문득 너와의 연애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헤어졌던 건지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을 돌아보기 위해 이전에 썼던 글이나 일기를 꺼내서 다시 읽어봤어. 너를 만나던 때에 연애초기부터 공책에 생각날 때마다 너한테 편지를 써왔던 게 있거든. 헤어지고 몇 달이 지난 시점까지 쓰인 그 편지들이야말로 이 주제에 맞는 부치지 못할 편지들이지 않을까 싶네. 무튼 그 편지들 덕을 좀 봤어. 그 당시 내가 적어나간 이야기들 속에서 너와 나의 모습이 잘 보였거든.
그 편지들을 읽어보니 너와의 연애가 연애초기의 좋았던 기억들로 포장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그리고 그 기억에는 어린 대학생의 순수한 감성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 그때 기억나려나.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했던 한 여름밤의 대학교 축제, 그때 정말 설렜었는데. 또 시험 기간이면 우리 공부한다고 그러고 도서관에서 밤새 웃고 떠들다가 집에 갔잖아. 그러고 나서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은 세상 걱정 없이 해맑았었지. 우리.
어찌 보면 꼭 너와 함께라서가 아니라 그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소소하지만 이쁜 일상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마지막 편지 두 장에는 왜 그 연애가 끝이 났는지 쓰여있었어. 나는 그동안 헤어질 때 느꼈던 상처만 기억하고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편지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배려심 깊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더라고.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너의 말이 속상하기만 한 어린 여자애였다면, 너는 군대와 취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책임감을 떠안은 남자애였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건데 말이야. 그때의 나는 특히 학점도 안 좋은 내가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많이 불안했었어.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해야 할 일들로부터 회피하고 너한테 더 의지, 아니 의존했던 거야.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어린 학생이었으니 내가 그랬듯 너도 그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많이 벅찼을 것 같아.
그리고 너와의 연애를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내가 너한테 너무나도 많이 의지하던 무렵 너가 나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내가 너를 좀 덜 좋아하면 좋겠다고 말했었지. 너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구나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말이 큰 상처가 됐어. 그래서 그다음 연애 때는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연애 상대로부터 독립적으로 지내려고 엄청 노력했거든. 근데 참 이상한 게 그렇게 해도 상대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상황은 오게 되더라고. 나는 여태껏 내가 그런 상처를 받은 게 나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는 건 내가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한테 거부당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겠더라. 그러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이렇게 너와의 시간을 되짚어보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8년 전에 가졌더라면 그 이후의 연애는 달라졌을까. 그래도 당시에는 마구 엉켜 풀어볼 엄두도 나지 않던 문제가 지금은 어렵지 않게 느껴지니 뿌듯하다. 이제는 알 것 같아. 나한테 중요했던 건 네가 왜 꿈에 나오는지 그 이유를 찾는 것보다, 그 시절의 기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했던 거야.
이제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