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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Oct 22. 2021

내 가족이 아니라 가능한 이야기_

가족 그 애증도 사랑이더라






몇 해전 재활요양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윽! 어서 병동에 콜 해요!"


재활운동을 끝낸 할머니 한 분이 바지에 변을 보셨다.

펑퍼짐한 환자복 사이로 변이 흘러내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멀리 흩어졌고, 병동으로 전화하는 소리만 울렸다.


"여사님! 할머니가 변을 봤어요. 빨리 내려와 주세요!" 


간병인을 호출했지만,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휴지를 최대한 돌돌 말아 쥐었다. 그런데도 선뜻 팔을 뻗을 수 없어 잠시 주춤거렸다. 곁에 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제야 뻣뻣한 팔을 뻗어 변을 처리했다. 찜찜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동안, 지켜보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치매까지 앓고 있는 할머니는 수치심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지만, 내가 본 할머니의 눈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눈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모든 변이 더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들이 변비로 고생하자 항문이 찢기지 않도록 맨손으로 항문을 마사지했다. 아이가 변을 잘 보는 날이면 내 속까지 편해졌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특히 제 자식은 똥도 예뻐한다.
그러나 제 부모가 어린애가 되어버린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똥이라도 싸게 되면 그 노인이
자신의 똥까지 예뻐하면서 길러준
부모라는 걸 부정하고 싶도록 정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부모 자식 간의
최악의 파국이다.

그런 죽음은 육신의 고통을
모면할 수 있다고 해도
육신의 고통과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그게 훨씬 더 무섭다.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만난 글귀다. 나는 이 페이지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날 비닐장갑을 끼고 그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내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나이가 늘어난 만큼 나를 필요로 하는 날도 늘어났다. 나는 내 아이 키우기 바빠 부모님이 버거워졌다. 책 속에 쓰인 내 마음에 흠칫 놀랐다가, 작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구나 싶어 안도했다. 동시에 죄스러운 마음에 가슴부터 울음을 터트렸다.


책은 부모를 버거워하는 나를 꾸짖지 않았다. 내가 가진 마음을 눈앞에 보여줬고, 스스로 울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식 된 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슬픔과 함께
멍에를 벗은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불효한 것일까..

그러나 솔직한 심정이 그러했다.

더는 모순된 이중의 고향,
두 개의 허상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_235







책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모래알만 한 진실들을 꺼내고서야, 가족을 향한 버거움에 타인에게만 친절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후, 비로소 솔직한 마음이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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