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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May 06. 2022

수도권보다 주도권_

시시껄렁한 만남 시



약속을 정하고 나선다.

기분 탓에 정한 약속이지만 준비하는 동안 흥겹지 못하다. 내심 상대가 약속을 취소해 주길 바란다. 그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못마땅해 기분은 더 내려앉는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가_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주기 아까워서다.

그렇다면 굳이 그 약속을 잡았나_

묻고 싶은 게 있어서다. 약속이 취소되면 좋겠다 싶으면서, 그 마음속엔 아닌 척 감춰진 '얻을 것이 있다'라는 사실.


얻으러 나섰다 잃고 오는 날이 많다. 

무언가를 얻고 묻기 위해 나를 낮추느라 상대에게 내 전체를 평가받아야 했다. 상대에게 그럴만한 힘을 쥐여준 것이다. 그러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멍한 눈빛으로 유리창에나 기댄다.  


나와 상대를 기만한 만남이었다.



그 누구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만약 누군가가 두렵다면, 그건 네가 그 사람에게 그럴만한 힘을 쥐여줬기 때문이다. 

<데미안>


가령 네가 나쁜 짓을 저질렀고 그걸 상대방이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너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된다. <데미안>



어떤 약속이 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면서 문을 열자마자 바람을 느끼게 만드는. 

신발에 용수철 달고 통통이며 걷는다. 꽃 가게라도 지날 때면 가다가 뒤돌아 작은 꽃다발을 저도 모르게 산다. 입꼬리가 살랑인다. 본인도 모를 뿐 꽃을 들고 걷는 저를 보는 이들은 다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나 보구나_


시간을 들이고 돈을 쓰고도 벅찬 포만감을 안고 돌아온다. 밤거리 불빛이 총총하고, 버스 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슬쩍 리듬 타다 자리를 양보할 순간 멈칫 없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이 될 건가


주도권은 내 손에

주도는 나를 귀하게 여기는 이에게 배우고

각자에 맞게 마시는 것

즐겁게_

깊게_

아득하게_

내일은 남겨두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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