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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Nov 21. 2021

효도는 셀프

실망과 기대 속에서_


시부모님이 다녀가셨다.

계시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낮게 가라앉은 기분은 남편에게도 전해졌다. 나는 내 불편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떠올려보았다.


남편은 위로 형을 두고 있다. 이 두 형제는 무척 효자다. 어머님은 아들들을 바르게 잘 키우셨고 며느리들은 조금 고단하다. 하지만 내게도 아들이 있으니 두 분 밑에서 이렇게 잘 자라준 두 형제는 내게도 좋은 본보기다.


병원 진료로 할 수 없이 또 아들 집에 올라오신 시부모님은 며느리 보기 미안하시다. 서로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각자 가진 몫의 불편함과 미안함을 안고서 함께했다.


어머님은 친정에 자주 가지 못하는 며느리에게 자주 못 가더라도 연락 많이 드리고 필요한 것도 사서 보내드리라고 하신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며느리는 시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정상 친정에 가지 못한 며느리는 어머님의 그 말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웃음소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 행복한 웃음소리가 그날따라 며느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시부모님이 수고했다며 며느리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시골집으로 내려가셨다. 내내 한편에 답답함을 가지고 있던 며느리는 어둠이 내릴 즈음 남편 앞에서 마음을 꺼냈다.


"어머님 아버님은 몸이 조금 아프셔서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참 행복하실 것 같아..

미안해하시긴 하지만 원할 때 아들, 손자 보실 수 있고.. 원하시는 건 어떻게든 아들들이 해주니까..

어제는 행복하게 웃는 웃음소리에 친정 부모님이 떠올라서 조금 서글펐어..

친정 부모님은 자식 농사를 잘 못 지어서 늘 딸 하나 잘 사는 것만 바라보고 사시는데..

그냥 좀 부러웠어. 어머님 아버님이."


며느리의 먹먹했던 마음이 푸념으로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의 표정이 딱딱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와이프 사이에서 나름 눈치를 봤던 남편도 이내 마음을 꺼냈다.


"부모님도 눈치 많이 보셔.. 아들 집에서 밥 한 번 더 먹고 가는 게 그렇게 미안해하실 일이 아닌데.."



".............."


가벼워지려고 시작했던 대화는 일상 속에 묻히고 며느리는 꺼낸 말들이 부스러진 바닥에 청소기를 돌렸다.



© joshuanewton, 출처 Unsplash





며느리는 남편에게 실망했다.

그 실망감을 또다시 언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모님이니까.. 누구에게나 자신의 부모님은 소중하니까..


하지만..

며느리도 자신의 부모님이 소중했다. 모든 상황을 합리화시켜 남편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들이 결국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다.






실망이라 함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상한 마음'이 아니라
'바라던 일'이다.

실망은 결국 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보통의 언어들 중_ 김이나>





며느리는 이 글을 읽고서 남편에게 자신이 '바라는' 답을 듣지 못해 실망했음을 알아챈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수고했다고.. 당신도 부모님 보고 싶었을 텐데.. 나도 아버님, 어머님께 잘할게.. '

라는 말을 바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며느리는 속단하고 추측했다.

남편은 며느리 눈치 보느라 힘드셨을 부모님만 안타까워하고, 부모님이 눈치 보실까 봐 신경 쓰는 며느리를 알아봐 주지 못한다고.



모든 감정을 털어내고 바라본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께 최선을 다한 것이고, 며느리는 친정 부모님께 그렇지 못했기에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부러움이 혼합된 자신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죄스러움.


며느리는 자리잡지 못한 오빠들을 대신해 혼자서 친정 부모님을 챙기는 게 힘들고 외로운 탓에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그게 남편이었다. 자신이 못하는 걸 다른 이에게 기대고 싶어 했다.

우습게도 딸의 이 무거운 고민을 친정 부모님은 알고 있다. 오빠가 셋이나 있는대도 혼자서 자식 노릇을 하는 딸 어깨에 올려진 짐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70대 중반의 두 노인은 딸을 위해 아프지도 못한다. 자신들의 건재함이 딸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열심히 잘 펼치지도 않는 무릎을 이끌고 일을 한다. 딸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병원비를 모은다. 모은 돈보다 더 빨리 몸이 병원을 원하는 것을 밀어내며.


각자 부모를 마주하며 사는 우리는 가족이지만 때로는 타인이 되기도 하다.


며느리이면서 딸인 여자.

자신에게도 딸이 있는 여자.


"엄마~ 나 결혼 안 하고 엄마 아빠랑 살 거야~

내가 엄마 갖고 싶은 도서관 지어줄게~

나이 들면 일하지 말고 책만 읽어~"


여자의 열 살 된 딸이 말한다.



© sweetlouise, 출처 Pixabay




여자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릴 적 엄마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 엄마 나이 들면 고생 안 하게 내가 용돈 많이 줄게~ 예쁜 거 많이 사줄게~ 그니까 조금만 더 힘내~"

그 말들은 어디로 흩어진 걸까..


여자는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를 다른 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자신이 실망스럽다. 평생 후회하지 않기 위한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 다른 이에게 기대를 거두고 스스로에게 기대를 걸어야 함을.. 늦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실망과 기대 속에서 여자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기대지 않고 자신의 부모님을 챙기기로. 어린 시절 엄마에게 야무지게 다짐했던 그 약속을 지켜주기로.


그리고 여자는 오늘 남편에게 한마디 던지며 꼬인 마음을 푼다.

"진짜~~ 공감 못해주네~ 흥칫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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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칫뿡 #가족이기도타인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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