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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03. 2023

'도'를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대학 시절을 잠시 함께 보냈던 동기가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제법 잘 지내기도 했고, 동기이지만 누나이기도 했던 나는 녀석과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는 동기 혼자가 아니었다. 낯선 여자분이 함께였다.


혹시 여자친구는 아닐까? 하는 내 생각은 방향을 잘못 잡았고, 나는 그 카페에서 수 시간 설득을 당했다. 우습게도 사람을 좋아는 하나 믿지 못하는 나와, 그런 나를 설득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대차게 일어나 나가지도 못한 채 불편한 상황에서 놓아주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동기는 더 강한 에너지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관계를 중요시하고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못 이긴 척 결국 그들이 제를 올리는 곳에 따라가게 되었다. 동기가 있어 무섭진 않았지만 가면서도 뿌리치지 못하는 스스로를 한탄하고 있었으리라.


나는 확고했다.

그들은 심신이 약해 어느 이론에 사로잡혀 사고하지 못한다. 고로 나는 그저 동기를 위해 자리하고 다시는 이 녀석과 연락하지 않겠다 되뇌었다. 도착한 곳은 어느 가정집이었고, 그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선해 보였다. 동기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했고, 그는 내게 우주의 섭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온통 어서 끝나고 가고 싶다는 생각 사이로 그가 말하는 소리가 스몄다. 거부와 동시에 제법 일리 있는 말이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결국 가진 만큼의 성의를 비춘 금액을 준비해 제사를 올렸다. 다행인 게 나 말고 두 명이 더 함께 어벙한 채 제사에 참여했다. 세상에 서툴다 못해 어리숙한 거절 못 하는 세명은 그렇게 급히 마무리하고 그곳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녀석을 피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결혼 후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남편은 녀석과 친구였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기도 했던 나는 한번 만나자는 권유를 거절하고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흠.


부창부수가 여기에 적합할지 모르겠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도 제사를 올렸다며 크게 박장대소했다. 남편은 친구였던 동기를 위한 마지막 배려였음을 밝히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했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같은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여전히 녀석은 '도'에 대한 배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따금씩 연락해오지만 남편은 편하게 만나 이야기할 거 아니면 만나지 말자고 전했다.


그렇게 또 수년이 지나 남편과 나는 가끔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동기가 그곳에 마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이 하는 배움이 내가 성장하려는 배움과 뭐가 다를까?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모두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므로.

그것이 정말 내게 올 것 들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마주할 것이라고.

좋은 걸 나누려는 이의 마음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좋은 걸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의 마음의 벽도 그만한 의미가 있다.


내가 지인들에게 필사와 기록에 대해 권하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들.

각자 자리에서 저마다 내게 좋은 걸 네게 권한다.


단, 필요한가에 대한 매너 있는 노크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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