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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0. 2023

희망이라는 낡은 옷을 입고

낯설기에 새로운 우리를 위해


옷장에 오래 묵혀둔 옷이 있다.


희망이다.


희망을 걸쳐 입었다.


유행이 지나 폼나지 않는다.


벗어 옷장에 다시 집어넣었다.


입을만한 옷이 없나 살피다 보니 어제 입고 벗어 둔 옷이 있다.


하루 더 입는다고 티 날 것 같지 않다.


낡은 옷을 입고 튀는 것보단, 무난하지만 얼룩이 옅게 묻은 옷이 더 나을 테다.


무난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버스에 오르는 사람을 본다.

어? 어디서 많이 봤는데..

버스 요금을 삑 지불하고선 첫 눈길이 닿는 곳으로 곧장 걸어가 선다.

조금만 더 고개를 돌리면 뒤편에 자리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어? 저기 내가 서 있다.

버스는 보이지도 않는데, 버스 오는 방향만 보고 있다.


머릿속에 두 여자의 잔상을 담아 버스에서 내렸다.

무심히 걷는 발걸음은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찾아 걸어간다.


툭툭!


누구지?


경계하는 눈빛으로 뒤돌아 본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사람을 뒤로 두고 걸었다.

흔하고 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가 미안해지는 기분을 꾹꾹 밟으며 걸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옷장을 열고 한물 간 희망의 옷을 입어야겠다.

시대를 돌고 돌아 지난 유행이 다시 변형이 되어 돌아온다.

레트로라나 뭐라나.


그런데

아무리 레트로라도 옷장 안에 머문 지난 유행과 닮아있진 않다. 낡은 부분을 덧대고 걸리적거리는 부위를 잘라낸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쉽지 않은 재단이다.


희망.

한 때 품은 것을 꺼내 둘러 입는 기분.

남보기 부끄러워하기 전

내보기 부끄럽지 않은 자세와 표정을 먼저 입어야 했다.


길 건너 당신과 내가 마주 보며 같음에 안심하기보다는

수없이 많은 나를 보며 당황하기보다는

희망이라는 나만의 옷을 표정을 차려입고

낯설게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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