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ㅂ ㅏ ㄹ ㅐ ㅁ Jan 31. 2023

돌이 코로 날아오고 있다. 피구하라

돌이 날아오고 있었다. 분명 돌이었다. 저대로 쭉 날아온다면 내 코에 명중할 것을 알 수 있었다. 피해야 한다.

 

딱 이 네 문장이 떠오름과 동시에 예상한 데로 돌은 내 코를 명중했다. 네 문장 생각 사이에는 저 돌을 맞는다고 코 뼈가 부러지진 않을 거라는 것,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통증보다 창피함이 더 클 거라는 촘촘한 생각이 얄팍하게 껴있었다.



잘 못 던져진 돌이 날아가 피하지 않으면 맞겠구나를 주변의 모든 이가 알았을 것이다. 매트릭스 한 장면처럼 그 순간의 기억엔 중력이 사라진 시간이 있었다. 다시 기억에 중력이 밀려든 건 코를 맞고 서다. 그제야 모두가 반응하고 움직였다. 그날의 기억엔 창피함과 기묘함이 함께하고 있다.



'피하지 그랬어~'

'피하면 되지~'

'그러게 조심하지~'

이 모든 말들이 와닿기 전에 툭툭 튕겨나갔다.



세상엔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피해보려고 돌아가 보지만 가고 가다 보면 막혀버린 네모 상자 속이다. 내가 만든 건지 누가 가둔 건지 모를 상자 안에 갇혀 외부의 자극에 귀 기울인다. 실체가 뭔지도 모르고 소리로만 가늠해 두려움을 키운다. 상자는 더욱 커지고 외부의 소리 역시 비례한다.



상자 하니 손원평 님의 <상자 속의 남자>가 떠오르네.



피할 수 없는 일은 돌아가도 피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빠른 길은 부딪혀 본 길이다.

코 한번 맞은 후로 날아오는 것을 잘 피한다.



그리고 한참 지나

날아오는 것을 잘 피한다고 되는 것만 아니라는 것을 아이의 피구 게임을 통해 알았다.



'엄마! 나는 잘 피해서 끝까지 살아남아~'



아이는 끝까지 잘 피해 살아남았으나 누군가를 살리진 못했다. 공에 맞기 두려워 받으려 하지 않아서다. 어린 시절 나 역시 공을 잘 피해 끝까지 잘 살았으나 결국 질질 끌다 죽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경기를 지루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기 싫어 적절한 타임에 살짝 공에 일부러 맞기도 했던 기억.



'공 받기 연습하자~ 공에 많이 맞아봐야 받을 수도 있어~'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와 연습 후 아이는 피구를 피하지만 않고 구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피구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피구는

피하고 구하는 인생 스포츠☆



돌과 마주했던 나와 피구공과 마주한 딸.

피할 수 없는 일이 남기는 교훈을 배웠다면 억지일까? ^^

작가의 이전글 기 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