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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Mar 08. 2023

긁는데도 가렵다


마른 나뭇가지가 껍질을 떨구었다.

두터운 외투를 입은 듯 단단히 여몄던 단추가 톡 떨어졌다. 벌어진 그 틈 사이로 아직 낯선 빛깔의 생명이 움텄다.

​소나무를 제외하고 잔잔한 색으로 겨울 자리를 지켜내던 만물이 간지러운 듯 긁적인다.  이제 갓 새치가 나기 시작하는 내 머리처럼 가렵고 어색하다.

​이미 몇 주 전부터 봄이 올 거라 알려주던 바람이 모두에게 소식을 전하고 다시 곁으로 와주었다. 다가오는 봄과 잠들려는 겨울이 서로 뒤엉켜 하루에도 몇 차례 나는 두 계절 안에서 코끝이 시렸다 눈이 부셨다 한다.


이내 가렵던 나무의 가려움을 긁어주듯 싹이 나왔다. 싹은 자신만의 보물을 고이 쥐고 있다 해를 향해 열어 보였다. 누군가를 향해 열린 마음이 그곳에 펼쳐졌다.


내 몸도 겨울과 헤어질 준비를 한다.

가렵다.

긁었더니 옆자리가 다시 가려워졌다.

답답해졌다.


내 안에 피어나고 싶은 싹들이 어느 곳을 향해 뻗어야 할지를 몰라 몸 구석구석을 들쑤셨다.


나는 남편에게 화원에 데려다 주기를 부탁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화훼 하우스를 찾았다.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밖에서 코 안 깊숙이 시원하게 빨려 들어오던 공기가 순식간에 낮게 가라앉았다.

흙과 꽃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호흡이 그곳에 있었다. 6살 아들은 "웩~ 고약해~!!"라며 마음을 뱉었다. 하지만 이내 아들은 그 고약한 공기에 적응되었고 갖가지 꽃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곳에서는 눈으로 호흡을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떤 꽃을 찾으러 왔을까?

'오래 살 수 있는 꽃'

'꽃을 피워내는 꽃'

'봄을 알리는 꽃'


나는 실패 없는 꽃을 사러 그곳에 갔다. 내게 이른 봄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꽃을 찾았다.
미리 피어나지 않고 우리에게 와서 피어날 꽃을 골랐다.



우리는 봄을 안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렵지 않을까?
아이들도 새로 이가 나려면 아프고 가려운데..
아이들은 어떤 모습의 꽃이 필지 몰라 궁금해한다.



"엄마, 어떤 꽃이 피어요? 무슨 색 꽃이에요?"


"지켜보면 알겠지~"(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문득 나는 어떤 색의 꽃을 가진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며 색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는 대충 어떤 색이 피어날 줄 알고 이 화분들을 택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상상으로 꽃을 기다릴지 모른다.

새삼 그 기대감이 부러웠다. 이 작은 화분의 선택조차도 균형을 이루고 싶은 내가 조금 안쓰러웠다.


나무들이 저마다 껍질을 떨궈내며 속살을 햇볕과 마주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들이 스르르 녹는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참아왔던 눈물을 꽃망울로 터트린다.

그 꽃을 바라보는 겨울에 머물러 있던 이들의 가슴에도 꽃망울이 터진다.

봄은 그렇게 사람들을 터트린다.



가렵던 자리에 싹이 손을 내민다.

바람도 햇볕도 누구 하나 그 손을 저버리지 않고 잡는다. 봄은 그렇게 내 앞에 그려지고 있다. 누구 하나 져버리지 않고 자신을 알렸다.


나는 어김없이 이 애틋함에 다리 힘이 풀린다.

눈에 힘이 풀린다.

이런 날은 눈가 기미 걱정은 잠시 곁에 내려두고 함께 볕 아래 눈을 감는다. 내 기미가 '빨강 머리 앤'의 '주근깨'처럼 사랑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나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_




<2021년에 쓴 봄 조각>




​#봄이야기 #봄에세이 #시쎄이 #더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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