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ㅂ ㅏ ㄹ ㅐ ㅁ May 02. 2023

아름다운 것이 남기고 간 자리_

그림처럼 서 있던 풍경들이 흩날렸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잿빛 풍경에 

꽃들은 나이 든 이의 머리에 자라난 새치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벚꽃 나무들이 줄이어 서 있다. 

신기하게도 같은 시기에 심어졌을 나무들인데도 먼저 피어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나무가 있다. 


어제는 아직 검은 바지 검은 외투를 입은 50대 남성이 하얀 나무 아래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을 막으려는 벗지 못한 겨울 모습이었다. 

그는 나무 아래 이쪽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두툼한 외투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갖은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작가가 모델을 사랑하면 사진이 잘 나온다고 했던가? 그 말을 몸으로 보여주듯 그는 열심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아내였을까.. 

자식이었을까..

메마른 일상에 지친 벗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 겨울을 벗어내야 할지 모를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_


  







아침 등원길 집 앞에 바람이 내려놓은 벚꽃을 주워 담은 아이의 손이 사랑스러우면서 슬펐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_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라는 사실에 대한 그리움을 남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고운 손을 사진으로 담아두는 일이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_




"엄마~ 이거 누나한테 줄까?"

"엄마~ 내가 유치원 다녀와서 누나 줄 거니까 사진 보여주면 안 돼~"


사랑을 남긴다. 







기억된 시간들이 쌓인 자리를 긁어본다.

어둡게 채색되어 애초의 시간도 사라져 버린 시간 앞에서 날카롭게 할퀸다.

피라도 배어 나올까 싶던 자리에 내게 없을 것만 같던 시간이 배어 나온다.


언젠가 여린 소망을 쓰고서 병 안에 넣고서 남몰래 띄워둔 비밀편지를 꺼내보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