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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Dec 29. 2023

의(기)미 없는 삶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류시화

"언니. 사는 게 '무의미'해..."


대학 시절 함께 학교를 다니던 동생이 줄곧 하던 말이다.


동생은 나른한 오후, 벚꽃이 흩날리던 교정, 불빛이 뭉그러지게 빛나 보이는 술집

그곳이 어디든 적막이 흐를 때면 한숨처럼 '무의미'라는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 한숨을 들을 때면 뭐라 답했었나? 

그마저도 20여 년이 가까워오니 빛처럼 퍼져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20대.

왜 삶을 '무의미'하다고 했을까?

나는 동생에게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지 않고 그저 술이나 권했다. 구겨 넣어진 마음들은 술 한 잔에 부풀어 올라 결국 다른 형태의 수분으로 흘러내렸다. 그 순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저 함께 취기 어린 눈으로 번진 달이나 보는 것이었다.


휘황찬란한 도시 불빛이 있는 대학교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굴다리 아래에서도 신선놀음이 가능했다.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그날의 밤바람과 막걸리, 새우깡이 떠오른다. 그대로 드러누워 자기만의 시간 속에 빠져들던 시간.


그 긴 정적이 하나의 대화였다.


아침이면 퉁퉁 부은 눈을 서로 마주 보며, 같은 시간 함께 진상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피식 웃고 말았던 시간들 안에 삶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참_ 우습다.

'진리'라는 게..

'의미'라는 게..

참된 건 무엇일까.

모두에게 승인받을 수 있는 이치는?


그저 이 순간들을 찌질하게 눈물로 채운다 해도 그 안에 '진리'와 '의미'가 있다.


나는 너를 보면서도 나를 본다.

너의 아픔에서 나의 아픔을 만난다.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다가온다.

너의 눈물을 위한 척 나의 눈물을 떨군다.

그 모든 순간 나는 나를 위한 너를 위한 '의미'로 살고 있었다.


시 필사하기 젊은 수도자에게








마구잡이로 쓰고 싶었다.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마음속에 먹구름을 구겨 넣은 것도 아닌데 자꾸 꺼내어 널고 싶었다.


어느 순간,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글쓰기 법'을 따르려는 내 머릿속을 휘젓고 싶었다.

잔뜩 뒤섞여 진흙탕이 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서서히 내려앉는 그 변화들을 보고 싶었다.

진흙탕이 될까 두려워 흔들리지 않으려던, 그 지루한 시간을 한 번쯤은 뒤집었다.


하루를 마치고 누웠다가 헛헛한 마음에 다시 일어나 앉아 시집 하나를 펼쳐 들었다. 해오던 '필사'라도 하면 이 허함이 채워질까 싶어서였다. 하루 중에 나를 느끼는 시간을 갖으려 시집을 보다가 어이없이 웃고 만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시가 아닌 누군가가 보면 좋을 시를 찾고 있었다.


이럴 땐 한마디 해줘야 한다.

빌어먹을_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의미 없는 삶보단 기미 없는 삶이면 좋겠다만

볕이 좋은 날이면

기미고 뭐고, 볕으로 소독하고 싶어 진다.

덕분에 기미는 복리로 불어나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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