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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05. 2024

발바닥에 재 좀 묻혀본 사람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안도현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







'연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좋다.

그 뜨거움과 절실함을 아는 사람이 좋다.


새까만 몸을 다 태워 하얀 빛바램만 남긴 연탄

꼿꼿하게 자신을 태우고 스스로 부서지지 않는 강직함을 지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바람이 드나들게 길을 막지 않는다. 


다 타고 남은 연탄이 빙판길에 던져졌다. 

연탄의 강직함이 아이들의 발에 속절없이 부스러지면서도 제 할 일 너머의 일까지 한다. 

웅덩이를 메우고 빙판길에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나는 그 '연탄'을 밟아 본 사람이 좋다. 





발바닥에 재 좀 묻혀본 사람


연탄은 청춘을 닮았던가?

제 몸 태울 불씨를 찾아 헤매며

내가 어찌 쓰일지 궁금해 목말라하는

목마르지만 결코 물을 마시지 않고

쉼 없는 갈증을 견뎌내며

온 밤을 태우고, 꺼질세라 

옮겨 붙어 함께 타오르는 

숯덩이 


핏덩이에서 시작해 숯덩이가 되고

잿더미 속에서 

한 줌 재가 되어

돌아가는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돌아가는 길

나는 어느 길

웅덩이를 메울 수 있을런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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