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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0. 2024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가정의 불화는 담장 안에 살고 있는 아이의 몸속으로 번졌다.

아이의 잘못이 아님에도 모든 것을  탓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뒤편에 '너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마음은 담장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안에 침잠한 불운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이 쏟아진다는 학창 시절.

낙엽이 굴러가면 그를 따라 쓸쓸히 나부꼈다. 스스로 가둬버린 담장 안으로 넘어 들어오는 담장 밖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웃음소리 안에도 그들만의 눈물이 있다는 사실을.


몇 해전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학창 시절 이야기로 들어섰다.

친구에게 그 시절 아이의 마음을 내놓았다.


내가 두고 온 어린아이.

담장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나.


친구는 놀란 듯 말했다.

"전혀 그렇게 안보였어~ 그런데 이상하긴 했지. 널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선을 긋는 게.."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가 좋아했던 이들에게 등지고 돌아서 울던 나를..

나는 좋아하는 이들에게서 상처받기 전에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 순간 상처는 늘 내 몫이었다.


"너를 좀 사랑했으면 좋겠어."

이 말을 듣던 날은 상처에 붙일 밴드는 받았지만 어디에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랐다. 


밴드를 붙일 곳을 찾아야 했다.

나를 살폈다.

어느 부위에 언제 상처가 생겼는지..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정말 누군가 내게 준 상처인지..

그저 내가 직접 나에게 낸 상처는 아닌지..


두려워 열어보지 못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담장 안에 있던 나를 불러 세웠다.


"얘~~"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거든 말한다.


'너는 이 순간에도 사랑받고 있어.'





나는 담장 안으로 책과 펜, 노트를 넣어주었다.

담장 안에 있던 아이는 책을 펼치고 그 안에서 쉰다. 펜을 들고 노트에 수많은 글을 끄적인다. 그 안에서 숨을 고른다. 읽고 쓰기 위해 웅크린 몸을 펼치고 앉는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싶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대문을 열고 담장 안에서 나온다.

그 나이 마흔이었다.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지금 알고 있는 것 중 어떤 것을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까?


다행히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에 대해서.

'나는 사랑받고 있다.'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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