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 안도현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
'연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좋다.
그 뜨거움과 절실함을 아는 사람이 좋다.
새까만 몸을 다 태워 하얀 빛바램만 남긴 연탄
꼿꼿하게 자신을 태우고 스스로 부서지지 않는 강직함을 지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바람이 드나들게 길을 막지 않는다.
다 타고 남은 연탄이 빙판길에 던져졌다.
연탄의 강직함이 아이들의 발에 속절없이 부스러지면서도 제 할 일 너머의 일까지 한다.
웅덩이를 메우고 빙판길에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나는 그 '연탄'을 밟아 본 사람이 좋다.
발바닥에 재 좀 묻혀본 사람
연탄은 청춘을 닮았던가?
제 몸 태울 불씨를 찾아 헤매며
내가 어찌 쓰일지 궁금해 목말라하는
목마르지만 결코 물을 마시지 않고
쉼 없는 갈증을 견뎌내며
온 밤을 태우고, 꺼질세라
옮겨 붙어 함께 타오르는
숯덩이
핏덩이에서 시작해 숯덩이가 되고
잿더미 속에서
한 줌 재가 되어
돌아가는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돌아가는 길
나는 어느 길
웅덩이를 메울 수 있을런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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