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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Dec 22. 2023

'광장'에서 '마지막 수업'

최인훈, 이어령 선생님의 명강의 후기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광장 1962년 서문>




웅장했다.

오케스트라 연주 중 낮은음을 가진 악기들이 명치 아래까지 울려 들어올 때의 묵직한 전율이었다.

영화, 음악, 책, 공연에서 받은 감흥은 내 체격 이상의 것들일 때가 많다.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면서 그 마음을 꼭 기록해야겠다며 일기를 쓰고, 표를 간직한다. 하지만 그 어느 방식도 그 순간을 박제하지 못했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 1961년판 서문>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안에 서면 나는 참 작은 존재가 된다.

밀리는 흐름을 타야 넘어지거나 밟히지 않는다.

광장은 다수를 수용할 만한 면적을 가졌다.

그 수용은 몸이라는 실체뿐인지 그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의 어디까지인지...

분명한 건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자고 광장이 읽고 싶어 졌던 7월이었다.

가볍지 않을 것을 알았고, 이 무더위 속에 굳이  찾아 읽을 만큼 문학에 깊은 조애가 있는 것도 아닌 내게 '광장'은 읽기 전부터 너무 큰 의미였다.





광장 최인훈 / 필사하기 / 읽어야만 하는 책











광장을 만나게 소개해 준 책이 있다.

소개팅 주선자는 '이어령 선생님'이시다.



열림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필사책모임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소포클레스 - 필록테테스>


"알다시피 대장장이가 두드릴수록 강철은 더욱 강해진다네. 보리밭은 밟힐수록 더욱 영글어지지. 인간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고통의 이야기야."


"고통을 피할 수는 없는 건가요?"


"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고통은 남이 절대 대신할 수 없어. 오롯이 자기 것이거든."


"고통이 순수하게 자기만의 것이라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위로도 되는군요."


"안타깝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네. 그런데 타자의 고통을 체감할 수 있는 하나의 상황이 있어. 바로 추위지. 겨울날 거리에서 떨며 구걸하는 어린애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돈을 주든가 피해 가든가 하지. 그 아이가 배고픈지 아닌지는 몰라. 하지만 추위는 다르거든.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거야."


"인간은 다 다른 삶을 살고 있어. 그러나 추위처럼 모두가 느끼는 감각이 있네. 인류 공통의 아픔이 있으면 내 추위와 남의 추위의 공감이 일어나는 거야. 외로운 섬, 무인도의 삶에서 광장의 삶으로 나갈 수 있는 거야. 최인훈이 쓴 '광장'도 결국 그런 이야기인 거지. 골목이나 골방에 있는 사람은 남의 골방의 아픔을 모르거든. 그러나 추위로 확연하게 느껴지기 전까지는 오히려 '모른다'는 인정이 매우 중요하다네.


"진실을 알려면 골방에서 나와야 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191-195p>



마지막 수업 필사하기 / 이어령 선생님 가르침




이렇게 읽고 옮기면서

또 한 번 선생님께 묻고 싶다.

넋두리겠다.


모든 상처 입은 자가

활을 옳은 곳을 향해

겨냥하진 않다는 것.

상처가 무기가 되고,

상처가 방패가 되는

그래서

또 다른 상처 입은 사람을 낳고 마는


.


.


모두가 아는 추위가

'추위'를 모르는 사람도 생겨난 지금

혼란과 위험이 도사리는 거리의 광장


무섭습니다.

사람을 쉬 믿지 말라

사람을 조심하라

말하는 지금

광장은 어디고 골방은 어디인가


지금의

광장과 골방은

어떤 진실을 안고 있을까요?


이렇게 걱정만 쓰고

지우면 그만인 저는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문은 잠그고

창문 틈으로 광장을 보네요.



b

y

ㅂ ㅏ ㄹ ㅐ ㅁ 올림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최인훈 광장 중>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최인훈 광장 필사하기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의 안갯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돕니다.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꽃이 만발합니다.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서두
제일 거친 곳이 아닌가요?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입니다.

<광장 56-57p>






광장 최인훈
필사를 해야만 우러나는 마음들이 있다. 더바램 / 광장 최인훈 필사모임




우리 목숨을
주무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장삼이사.

그놈이 그놈이다.
자기만 별난 줄 알면 못난이 사촌이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

나는 영웅이 싫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좋다.
내 이름도 물리고 싶다.
수억 마리 사람 중의
이름 없는 한 마리면 된다.


<광장 179p>


나에게 필요한 것 / 광장 최인훈 필사하기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그리고.
이 한 뼘의 광장에 들어설 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만한 알은체를 하고,
허락을 받고 나서 움직이도록 하라.

내 허락도 없이
그 한 마리의 공서자를
끌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지.

그런데
그 일이
그토록
어려웠구나.

<광장 179p>





한 남자의 간절한 바람이다.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

그것을 갖는 게

그것을 지키는 게

그토록 어려웠던 시대의 슬픔


슬픔을 지층 삼아 쌓아 올려진 이곳에서 우리의 광장은 어떤 모습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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