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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Feb 16. 2024

엄마, 나 오늘 쓸쓸한 남자였어

삑삑삑 삑삑 디리릭


태권도에서 하원하고 돌아온 아홉 살 아들이다.

차가운 귀와 볼을 엄마 품에 안겨 녹이고선, 저 하고 놀 것이 뭐가 있나 집을 두리번 거린다.


마침 손에 잡히는 말랑이를 조몰락거리며 자신이 뱉지 않은 것처럼 한마디를 한다.


"나 오늘 쓸쓸한 남자였어..."


하던 일을 멈추고 아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태권도에서 앞 구르기를 했는데, 나만 잘 못했어. 그래서 친구들이 웃었어"


"속상했겠다."


"아니~  그냥 쓸쓸한 남자였어..."


분명 부끄러웠고 속상했을 아들인데 말하는 모습은 심플하기 그지없다.


"누나한테 부탁해 봐야겠다"


그날 밤 매트 위에서 두 아이는 계속 굴렀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은 걸까?"


아들의 풀 죽은 목소리에 어디선가 주워 읽은 글을 생각해 내 답했다.


"겁이 많다기보다는 조심성이 많은 거야~"


아들은 다시 매트를 굴렀다.

누나도 구르고, 아빠도 구르고, 엄마도 굴렀다.


그리고 다음 날 아들이 태권도에 다녀왔다.


"엄마! 나 오늘은 멋진 남자였어"


앞 구르기를 성공하기 전부터 녀석은 멋졌다.

못하는 것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순간부터 말이다.

성공하고도 아침, 저녁으로 더 완벽한 앞 구르기를 위해 구르는 순간까지.


그렇게 쓸쓸한 남자는 스스로 멋진 남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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