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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Feb 09. 2024

자꾸 울궈 먹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박완서 






기차 타고 서울에 오고
중일전재, 2차 대전, 가난, 쌀 배급,
해방, 6.25.
나를 스쳐간 문화의 부피를 생각할 때
500년은 된 것 같아요.
우리 할머니에 비하면
엄청난 체험 부피가
자꾸 울궈먹고 싶게 하거든요.

-박완서 작가님









정임씨가 울궈먹는 시절 이야기도 그렇다.

정임씨는 내 엄마다.

체험 부피가 클수록 울궈먹을게 많다.


정임씨가 도시로 놀러 와 외출이라도 할 때면 나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진이 빠졌다.


정임씨는 젊은 시절 시골에서 돈벌이가 되지 않아, 도시로 미역을 사들고 올라와 장사를 했다.

그래서 내 유년시절에는 정임씨의 부재가 많다.


정임씨가 없을 적 나를 모르듯

홀로 도시로 올라가 장사한 정임씨의 젊은 시절을 나 역시 모른다.

몰라서일까..

알려고 하지 않아서일까..

정임 씨는 자신의 체험부피를 울궈먹기 시작했다.


옷이라도 하나 사드리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무릎이 시원찮은 정임씨가 걸려 넘어질까 효성지극한 딸처럼 정성스럽게 에스코트했다.


"내가 어쨌는 줄 아냐?

그 큰 미역 박스를 들고 지하철 탈라고 계단을 내려갔다! 가다가 한 번은 궁글르고...

그래도 어짜다 착한 젊은이라도 만나믄 들어다 주고 했제.


또 한 번은 미역을 들고 지하철 문이 닫힐라고 할 때, 휙 문 안으로 박스 먼저 던졌는디 문이 닫혀가꼬 지하철 종점까지 찾으러 갔었다. 아이고~ 다시 하라믄 그라고 못한다."


식당에서다.

"목동 시장에서 장사할 때 속옷 가게 사장님한테 미역 좀 줌시로 그 앞에서 물건 좀 팔게 해달라고 했제.

그때는 점심값도 아까워가꼬 그냥 있으믄 저 옆에 도넛 사장이 빵 갖다주고 만두가게 사장이 만두도 주고 그랬니라. 그땐 그게 얼마나 고맙고 맛있등가. 나도 그래서 주고 그랬제~"




"나는 인자 교회 사람들이 그라고 좋더라.

맨당 절에다 불 쓰고 해도 모르것드만, 교회 사람들은 미역도  잘 사주고 소개도 잘 시켜주고. 교회가 좋드라."



정임씨는 내 이름을 절에서 지었다. 그리고 이름에 전설까지 붙어가며 "넌 호강할 팔자여. 다 너를 떠받들면서 살것이다." 뇌새김해왔다. 그런 정임씨가 종교를 들먹이며 사람 좋음을 판단했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덜어준 이들이 정임씨에겐 가장 따르고픈 신이었을 것이다.


정임씨와의 나들이는 시든 때도 없이 목이 멘다.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딸 입장으로 어미에게 새겨진 지난 고통을 쉼 없이 듣는 것도 못할 노릇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임씨는 젊은 정임씨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그 시절 도시로 장사를 떠났던 정임씨를 보지 않고도 봤다 싶다.

울궈 먹을 대로 울궈 먹은 이야기는 내내 외로웠던 모양이다.


앞으로도 정임씨는 계속 울궈 먹을 것이다.

나는 들어도 못 들은 척 계속

  "대단해 정임씨~ 정임씨 아니었으믄 우리 집은 진즉 망해브렀어~" 울궈 답할테다.


울궈 먹은 이야기는

알아달라는 이야기였다.

정임씨 이야기에 진이 빠진 나는

시장을 갈때면 자판없이 팔고 앉은 어르신에 눈이 먼저 간다.

정임씨 이야기에 진이 빠진 나는

계단을 무겁게 오가는 어르신의 짐을 들어드린다.

정임씨 이야기에 진이 빠진 나는

어딜가도 사람좋다는 소리를 제법 듣는다.


진이 빠진 나는

어느 동산에 진 꽤나 뿜어낸 나무를 닮아가고 있었다.

정임씨의 빅픽쳐일리 없지만

누군가의 체험 부피는 그렇게 울궈 먹으며

누군가를 우러나게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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