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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3. 2022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도_

나다운 필사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필사 책 추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뻔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 나 다 운 이 야 기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이 제목의 시집을 가지고서 이 시를 이제야 끝까지 음미해 본다.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지금 알고 있는 것 중 어떤 것을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까?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것 중에 그때 알았으면 좋았겠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럼 나는 지나온 시간 동안 '그때' 보다 더 나아지지 않은 것일까?


다행히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에 대해서.

'나는 사랑받고 있다.'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어야 했다.


가정의 불화는 담장 안에 살고 있는 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님에도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뒤편에 '너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은 담장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내 안에 침잠한 불운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이 쏟아진다는 학창 시절.. 나는 낙엽이 굴러가면 그를 따라 쓸쓸히 나부꼈다. 스스로 가둬버린 담장 안에서 담장 밖을 지나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웃음소리 안에도 그들만의 눈물이 있다는 사실을.


몇 해전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학창 시절 이야기로 들어섰다. 친구에게 그 시절 내 마음을 내놓았다.

내가 두고 온 어린아이. 담장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나.

친구는 놀란 듯 말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하긴 했어. 널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선을 긋는 게.."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가 좋아했던 이들에게 등지고 돌아서 울던 나를..

나는 좋아하는 이들에게서 상처받기 전에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 순간 상처는 늘 내 몫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밝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이상 웅크릴 수 없을 만큼 움츠렸다.


"너를 좀 사랑했으면 좋겠어."


이 말을 듣던 날은 상처에 붙일 밴드는 받았지만 어디에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밴드를 붙일 곳을 찾아야 했다. 나에 대해 알아야 했다. 어느 부위에 언제 상처가 생겼는지..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정말 누군가 내게 준 상처인지.. 그저 내가 직접 나에게 낸 상처는 아닌지..

두려워 열어보지 못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담장 안에 있던 나를 불러 세웠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고. '너는 이 순간에도 사랑받고 있어.'


나는 담장 안으로 책과 펜, 노트를 넣어주었다. 담장 안에 있던 나는 을 펼치고 그 안에서 쉰다. 을 들고 노트에 수많은 글을 끄적인다. 그 안에서 숨을 고른다. 읽고 쓰기 위해 웅크린 몸을 펼치고 앉는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싶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대문을 열고 담장 안에서 나온다. 그 나이 마흔이었다.


나는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아주 야무진 바램이다_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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