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상은 두 번 이상 보지 않는 나인데, 몇 번이고 정주행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그중 인현왕후의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많이 돌려 본 드라마일 것이다. 이번에도 티빙을 보다가 정주행을 하기에 밤을 꼴딱 새워서 8회부터 16회까지 다 봤다.
난 무조건 해피엔딩, 그것도 꽉 닫힌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시련을 겪는 과정이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마음이 아파서 스킵할 수 있으면 넘기고 결말만 보는데, 이걸 이 드라마가 바꿨다. 물론 희진이가 울고 붕도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과정이 가슴 아픈 건 마찬가지지만 그들과 함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간 뒤 얻는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감정이다. 이걸 마지막 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 깨달았다.
이제 시련이 끝난 건가 하는 시점에서 주인공 희진과 붕도가 다시 헤어졌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붕도는 조선 팔도를 쫓기며 떠돌았고 희진인 기억을 잃고 붕도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붕도가 쓴 서신을 희진이 보고 붕도를 기억해 낸다. 결국 부적이 아닌 사랑의 힘으로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을 보고 나니 눈물 나게 행복했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시간에 있는 서사를 좋아한다. '같은 하늘 다른 시간'이라는 서사를 생각하면 조선시대, 궁에 잡혀 온 붕도와 내레이션을 위해 현대, 궁에 서 있던 희진이의 모습이 담긴 장면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분명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다른 시대를 살고 있어 만날 수 없는 사랑. 1년을 기다려도, 10년을 기다려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도 사랑하는 그대를 만날 수 없단 사실이 서사를 더 아프게 만든다.
붕도를 만나 희진인 세 번이나 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부적으로 목숨을 연장한 붕도는 생사를 몇 번이나 넘나들다가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다.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결국 사랑이라는 매개로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맞은 그들이지만 난 인현왕후의 남자란 드라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슬프다. 열린 결말도 아니고 해피라고 못박은 엔딩인데 왜. 허망하게 죽어버린 윤월이 때문일까 더는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붕도 때문일까. 그것도 아님 그들의 사랑이 뿌리 깊은 슬픔을 기반으로 해서일까. 엔딩이 새드였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까지 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드라마의 16회가 끝나고 1회가 다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1회 첫 장면인 말을 탄 붕도가 서울로 와 차를 탄 희진일 만나는 부분이 나왔다. 진짜 엔딩은 사실 이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서로의 세계를 지키며 사랑하던 그 평화로운 어느 날의 한 장면이.
덧붙이는 글.
붕도의 말을 빌리자면 희진이가 지식은 좀 부족해도 무식한 사람은 아니었다. 할 말은 하고 살며 솔직했고 누구에게 의존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되려 붕도에게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붕도 역시 똑똑하며 최선을 다해 표현할 줄 알고 무례하지 않았다.
난 주인공이 우는 장면을 좋아한다. 특히 인현왕후의 남자의 희진 배우는 눈물의 강약 조절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아픔을 표현했다고 느꼈고, 이런 것 때문에 붕도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오열하는 장면이 좋았다. 그 장면은 볼 때마다 놀라지만 이번에 다시 봤을 때 느낀 건 정말 꾸밈이 없었다. 예쁘게 울려고 하지 않았고, 브라운관 너머 있는 사람에게까지 이 사람이 몸의 기력을 다 빼가면서 슬퍼하고 있구나란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