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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쓰다미리 Aug 05. 2024

집안 내력입니다만 2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집안 내력인 게 맞지만, 엉망진창인 것도 집안 내력인 게 맞다.


첫 아이를 낳던 날이었다. 

엄마랑 남편과 함께 있던 중 오후 2시쯤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남은 날이었는데 진통이 심상치 않았다.  아빠에게 진통이 오고 있으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전화를 했더니 “애기는 그렇게 빨리 안 나온다. 엄마도 너네 둘 다 하루를 꼬박 아팠어. 아빠 일하고 갈 테니까 기다려”라고 하셨고, 남동생은 “여자친구랑 밥 먹고 있어”라고 했다. 


집안의 첫 손녀의 출산인데도 양씨들은 누구 하나 불안해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초산인 우리 부부는 진통간격이 빨라질수록 무서워서 결국 7시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됐고, TV와 소파가 구비되어 있는 가족분만실을 선택해서 엄마랑 남편이 함께 있어줬다. 


초보 아빠인 남편은 어찌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데 엄마는 내가 진통이 멈출 때마다 “애가 나오면 바로 젖을 먹어야 되니까 얼른 젖을 좀 짜봐”라며 내 가슴을 양손으로 문지르고 쥐어짰다. 왼쪽 가슴은 엄마가 짜고, 오른쪽 가슴은 남편이 짜는 가운데 출산 통증을 겪고 있는 이 시추에이션이 어이가 없었지만 짜증을 낼 기운조차 없었다. 


밤 10시쯤 진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을 때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엄마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딸이 진통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선덕여왕 좀 틀어주면 안 돼요? 지금 선덕여왕 할 시간인데 우리 딸이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거 보면 진통을 좀 덜 할 거 같은데”


농담 같지만 정말로 우리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간호사가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TV를 틀지 않았던 걸로 봐서는 어이없어했을 것이 뻔하다. 그리고는 진통은 점점 심해지고 빨라지는데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보이질 않았고, 11시 21분에 드디어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첫아기를 품에 안고 남편과 울고 있는데 엄마랑 남동생이 나타났다. 


“엄마는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수동이랑 선덕여왕 보고 왔지~ 오늘 너~무 재밌더라”


그렇다. 

우리 엄마는 딸이 첫 손녀를 낳는 그 순간에 남동생이랑 선덕여왕을 보고 있었고, 12시가 다 되어 나타난 아빠는 “오메 ~ 뭔 애기가 이렇게 빨리 나왔대” 하셨다. 


나의 첫 출산에 걱정근심을 하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양씨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엉망진창의 뿌리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내 가슴에서는 젖이 줄줄줄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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