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82, 한수희, <마음의 문제>
그 끝에 나는 아이를 미워하게 됐다. 어떤 날은 그 미움이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미워라, 정말 미워. 어떻게 저렇게 내가 싫어하는 인간을 내가 낳았을까? 그렇게 그 애를 바닥도 없이 미워했다.
아, 다행이다. 나만 내 아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들끼리 푸념처럼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다고는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래서 아이가 너무 밉다고, 아이가 너무 싫다고 말하는 엄마들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가 너무 밉고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나쁜 엄마처럼 보일까 봐, 내 아이가 다른 엄마들한테도 미워 보일까 봐.
달콤이는 등센스가 장착된 아이였다. 잠도 잘 안 자고, 잘 먹지도 않았다. 잘 먹지 않으니 푹 자지 못 했고 푹 자지 못하니 계속 울었다. 그래서 3개월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직해야 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뻤다.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던져주고 나는 회사에서 늦게 늦게 퇴근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키우기를 바랐던 남편과의 잦은 싸움 끝에 아이가 3살 때 퇴사를 했고, 전업주부가 됐다.
말이 빨랐던 아이와는 매일 싸웠다. 쬐끔한 게 한마디도 안 지고 도리어 매번 엄마를 가르쳤다. 엄마!! 하며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째려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길 수가 없어서 그 작은 아이를 때렸다. 고집을 부리며 울기 시작하면 달래고, 얼래고, 이해시키고, 설득하다가 기어이 등짝이든, 엉덩이든 때리고 말았다. 그럼 아이는 더 죽는다고 울었고, 그럼 나는 더 미워서 때렸다. 속으로 미워 죽겠다고, 너는 왜 이렇게 밉냐고, 나는 왜 이런 애를 낳았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소리치며 때렸다. 다른 엄마들은 혼내고 나면 잠든 아이를 보며 후회했다는데 나는 잠든 아이를 째려보며 미워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네가 나를 이런 엄마로 만들었다고 아이를 원망했다.
달콤이는 키우는 동안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아이한테 이기고 진다는 기분이 든다는 게 어이없지만 이 표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혼내서 아이가 울어도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아이가 커서 나에게 바락바락 대들 때도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나의 모성애를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아이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0.1초도 고민하지 않겠지만 미울 때는 밉다.
아이에 대한 미움은 사춘기 때 절정을 이루었고, 나는 그때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다. 너는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를 깨워주지 않았고, 아이의 방을 청소해주지 않았다. 방문을 열면 침대까지 걸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러웠고, 방구석구석의 음식물 잔해들에서 곰팡이가 피고, 구더기가 기어 다닐 것 같은 방이었지만 절대 청소해 주지 않았다. 아이의 빨래는 개어주되 서랍에 정리해 주지 않았고, 아이의 밥은 차려주되 같이 먹지 않았다. 내 목숨을 내줄 만큼 사랑하는 아이를 미워하고 상처 주는 일은 가슴 아팠지만 아이는 티끌만큼도 상처받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 모습에 내가 더 상처받았다.
하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 보니 자기가 필요할 때만 부리는 애교에도 엄마는 넘어가고 만다. 어쩌다 한 번의 애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고, 달콤은 영악하게 그걸 이용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는 꿍꿍이로 엄마~ 하며 품 안에 안기면 미워 죽겠으면서도 내 새끼 냄새가 그리워 킁킁킁 냄새를 맡고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귀찮은 척했다.
17살, 길고 길었던 달콤의 사춘기가 끝나고 아이는 다시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다시 쫑알쫑알 그 입을 다물지 않고 얘기를 시작했고,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달콤이 가 사춘기 기간 동안 아이와의 거리감을 갖는데 익숙해진 나는 이 무슨 퇴행인가 싶을 만큼 아이는 다시 엄마를 부른다. 그 엄마소리에 가끔 울컥 눈물이 난다. 귀찮으면서도 행복하다. 아이가 자기 방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부르면 안방 침대에 누워 일어나기 싫은 몸을 기어이 일으켜 아이방으로 가 문을 벌컥 열고는 “왜왜왜~~ 필요하면 네가 오면 되잖아~~왜 불러 왜~~” 잔뜩 짜증을 내놓고는 아이가 침대에 누워 “히히~ 일루와 엄마, 내 옆에 누워” 하면 그만 배시시 웃으며 아이 침대로 폴짝 뛰어올라가 아이 품에 꼭 안긴다. 나는 평생 이 아이를 절대 이길 수도 미워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우 억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