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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쓰다미리 Jun 26. 2024

나의 엉망진창 인생의 시작.

나의 엉망진창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이름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이름은 양미리다. 

나는 자기소개를 할 때 내 이름을 듣는 상대방의 반응으로 상대방의 나이를 가늠한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양미리요?“ 라고 웃는 사람은 40대 이상, 아무 반응이 없으면 20~30대 초반이다. 30대 이후의 사람들 중 웃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 웃지 않는 사람은 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생선 양미리와 이름이 같다. 네이버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온통 생선 사진만 가득하다. 아마도 내가 BTS만큼 유명해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생선 양미리를 이길 수 없다.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정말 끝도 없이 많은데 하....뭐부터 말해야 하나.

아, 가장 처음은 우리 부모님이 어찌하여 사랑스러운 첫째 딸의 이름을 생선 이름으로 지었는지 그 연유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생선 양미리는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에서 주로 잡히는 생선으로 전라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생선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놀림을 많이 당했을 것 같다고 종종 물어보는데, 초, 중, 고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생선 이름과 같다고 놀림을 당한 적이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전라도 분이시고. 


엄마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엄마가 병원에서 나를 낳기 위한 진통과 싸우고 있을 때 옆에서는 아빠가 사랑하는 첫 딸의 이름을 순한글로 짓고 싶다는 바람으로 국어사전을 열심히 찾아가며 고르고 골라 선택한 이름이 ”은하수“라는 뜻을 가진 “미리내”였고, 아빠 성의 “양”을 붙이고, 부르기 쉽게 “미리”라고 지어 붙인 이름이 하필이면 양.미.리(梁미리)님 되시겠다. 오히려 학교 다닐 때는 한문시간에 한글로 쓰는 내 이름을 보고 자기 이름을 한문으로 못 써서 한글로 쓰는 거라는 억울한 놀림을 당한 적은 있다. 

그렇게 아빠의 사랑(?)으로 탄생한 나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고 나서야 서울에 사시는 큰아빠와 고모들이 내 이름이 생선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제일 많이 놀려 먹은 사람이 우리 고모들이었다. 내가 기억이 나는 대여섯 살 때부터 제사 때면 고모들이 “아유~~오늘은 양미리를 좀 구워 먹어야겠다”라고 놀려서 기어이 나를 울리고 말았다. 고모들 덕분에 나는 양미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혹여나 친구들이 생선 양미리의 존재를 알게 될까 봐 늘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에 취직을 해서 도시에서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내가 하는 일이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었고, 어르신들은 내 이름 석자를 듣는 순간,

“아이고~ 이름이 양미리야? 오매~안쓰러워서 어떡해”부터 시작해서 “(옆의 사람들과 수군수군) 아니 이름이 양미리래, 오매 그래? 아니 어째야쓰까. 이쁜 딸 이름을 어째 그라고 지었을까나” 하며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한동안 들썩들썩하다. 그리고는 그다음부터 내 담당이 아닌데도 “양미리 선생님 어딨 어요?”하며 나부터 찾는다. “어머님~~그 일은 제가 담당이 아닌데 저를 찾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아이고~ 나는 다른 선생님들 이름은 몰러. 양미리 선생 이름만 기억나는데 그럼 어떡해.” 하시며 이분, 저분, 그분들이 다 나만 찾아서 참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도 접수를 하고 나면 큰 전광판에 “양미리” 세 글자가 떡 하니 올라와 있고, 내 차례가 되면 친절하신 AI님께서, 혹은 간호사선생님께서 아주 큰 소리로 “양.미.리.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라고 부르시면 어른들은 앞, 뒤를 돌아보시며 사람 양미리를 찾는다. 그렇게 내 이름이 전광판에 나오는 병원은 다시는 가지 않아 사실 동네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이 몇 군데 없다.


어느 날은 남동생한테 카톡으로 편의점 커피 쿠폰 하나가 날아왔다.

 “이게 뭔데?”

“라디오에서 이름 사연 문자 보내라길래 누나 이름 보냈더니 당첨 돼서 쿠폰 받았어. 누나 덕분이니까 누나 먹어”

“이 수박에 씨발라먹을~~~~#$%^%@^&” 


속초는 내가 정말 가고 싶어 하지 않은 도시 중에 한 곳인데 바로 생선 양미리가 지역 특산물이라서 “양미리축제”가 매년 성황리에 벌어지는 곳이고, 이 축제가 열릴 때면 6시 내 고향과 비슷한 프로그램 여기저기에서 “양미리축제”의 현장이 중계되곤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지인들은 TV에서 만난 “양미리”를 그렇게 반갑다고 인증샷들을 찍어 보낸다. 매번 내가 버럭버럭 하는데도 그게 그렇게나 재밌는지 지치지도 않고 또 보내고 또 보낸다. 언젠가 가족끼리 속초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여행 짐에 작은 아이 바지를 안 챙겨 와서 급하게 속초 홈플러스에 갔다. 홈플러스에서 아이 옷을 사고 직원이 “홈플러스 회원이세요? 적립해 드릴게요”라는 질문에 이곳이 속초임을 방심한 내가 “양미리요”라고 하자, 직원이 “네???”라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무엇이 잘못 됐는지 빠르게 인지하지 못하고, “양.미.리.요”라고 또박또박 다시 대답을 해드렸다. 그러자 직원이 “아~성함이 양미리에요? 아~~” 하시며 고개를 숙이고 큭큭큭 숨죽여 웃으시는데 ‘아, 여기 속초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가끔 친구들이 이름이 그렇게 싫으면 개명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나는 양미리가 싫었지, 미리가 싫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개명 대신에 예명을 사용한다. 


나의 예명은 “이소희”.(아~~청순하고 우아해)


이 이름은 큰 딸의 초 1 받아쓰기 공책의 겉표지에 쓰여 있던 이름이었다.

분명 "천지예"의 공책인데 이름에 떡 하니 “이소희”가 적혀 있어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천지예가 싫어서 이소희라고 적었다는 거다. 아니 천지예가 어때서, 네 이름은 무려 10만 원이나 주고 지은 이름이고, 뜻도 좋고, 이름도 이렇게 예쁜데 왜?라고 따지자 너무나 쿨하게 “그때는 어렸나 봐. 지금은 천지예가 좋아”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 내가 “그럼 이소희 이름 엄마가 쓸게. 이 이름 엄마 너~무 맘에 들어. 엄마 이름 할래”하고 딸에게 허락받고 받아온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일반인이지만 예명을 공식적으로도 사용한다.

회사에서도 “이소희”로 개명했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렸고(물론, 양미리 또 시작이다라는 식으로 아무도 귀담아듣지는 않으셨습니다만), 굳이 본명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는 이소희라고 적고, 가끔 예약할 때도 이소희라고 예약한다. 하지만 예약자 분 성함을 물을 때 “양미리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예약자 성함에 없는데요”라는 답변을 듣고 나면 “아,아, 이소희라고 예약했어요”라고 허겁지겁 대답하거나, “이소희님~”이라고 불러도 나인 줄 모를 때가 많지만...흠흠.. 어쨌든 나는 이소희로 살고 있고, 성까지 개명이 되는 날이 오면 이소희로 개명할 거다.

그런데 이것조차 너무나 양미리답다는 게 슬.프.지.만


추가에피소드 1개 더. 


아빠의 고향은 전남의 땅끝 ‘수동리’라는 마을이다. 서울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설날을 맞아 아빠의 고향에 방문했고 동생을 임신해서 만삭이었던 엄마는 시댁에서 설날을 보낸 후 친정에서 동생을 낳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고 ‘수동리’ 할머니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내 동생 이름은 ‘양수동’이다. 수동리에서 태어나서 수동이. 

그 후 서울에서 자랐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우리는 내가 7살 때 아프신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아빠의 고향으로 내려갔고, 양수동은 사는 내내 ‘수동리에 사는 수동이’로 놀림을 받았다. 


“너는 이름이 뭐시냐”

“수동이요”

“아따~ 니 사는데 말고 이름이 뭐시냐고”

“수동이라고요”

“아따~ 긍께 너 수동에 사는지는 앙께 이름이 뭐시냐고야”

“오메~ 수동이라고요. 양수동이요. 내 이름이 수동이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동생의 반항아적 기질에 이름이 한몫을 단단히 한 게 틀림없다.

동생이 중학생이던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거기 수혁이네 집이죠?”
“네? 아닌데요”

“어? 맞는데. 거기 양수혁 집 아니에요?”

“아닌데요”

“어? 이상하다. 전화번호 맞는데”


그렇다. 내 동생의 예명은 양수혁이었다. 역시 이소희의 동생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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