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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5. 2024

우리도 모르는 인연과 운명의 굴레에 대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




왕복 5시간의 등하교 생활을 마치고 쉐어하우스에서 새학기를 맞게 된 대학생 원준. 그곳에서 1층에 사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날카롭고 차가운 첫인상의 그녀는 어딘가 낯이 익는데, 알고 보니 잘 나가는 걸그룹 스윗드림의 핵심 멤버였지만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이두나.



두 사람은 불편한 첫만남 이후 자꾸 마주치게 되고, 저체온증으로 쓰러진 두나를 원준이 응급실에 데려가면서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다. 집에 틀어박혀 담배 피울 때 말고는 밖으로 나오는 법 없던, 매사에 냉소적이던 두나는 원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줄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원준이 묵고 있는 쉐어하우스 2층의 남자들과 원준의 오랜 친구 진주까지 원준의 주변인들과도 관계를 맺게 되면서 조금씩 세상에 가까워지는 두나. 점차 두나와 원준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두나는 그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아이돌 시절 힘들었던 심신을 회복해간다.



무너진 아이돌 두나의 사랑과 재기에 대한 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의 기본적인 속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쯤 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 결정적인 남주 원준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결국 타이틀을 차지할만큼 메인 주인공인 두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드라마는 이런 이야기다.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하나뿐인 엄마는 어려서는 할머니에게 두나를 방치하고, 아이돌로 성공한 뒤에는 딸을 돈줄로만 보며 발목을 잡는 상황. 그렇게 두나는 외롭게 성장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P에게 픽업되어 걸그룹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P에게 멘토나 회사 관계자 이상의 감정을 갖고 의지하게 되지만,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P는 두나에게 소속 연예인으로서 역할에 충실할 것만을 강요한다.


걸그룹 스윗드림의 핵심 멤버 두나. 그녀가 아니면 스윗드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만큼 그녀의 존재감은 컸다. 그러나 오랜 외로움, P와의 관계, 만인의 연인인 동시에 욕받이인 연예인 생활에 지친 탓일까. 어느 순간 노래를 할 수 없는 입스를 겪는다. 그렇게 무너진 아이돌이 된 두나는 P에 의해 쉐어하우스에 고립되고, 두나가 없는 스윗드림은 활동중단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사랑받아본 적 없는, 누구와도 진심 어린 관계를 가져본 적 없는, 누구와도 친구가 되어보지 못한 두나. 그러나 원준을 만나고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일상에도 일어난다.



그렇게 원준을 통해 회복한 그녀는 자신이 노래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고, 다시 노래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원준과의 사랑도 놓칠 수 없어 갈등한다. P와 소속사는 손해배상 청구까지 걸면서 두나를 복귀시키려 하고, 이를 계기로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는 두나. 그리고 그녀는 힘들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즐기며 훌륭하게 재기한다.


아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원준과의 관계가 변화되고, 냉소적인 두나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여느 멜로 드라마를 볼 때보다 더 애절하고 안타깝고 아쉬운 감정을 준다.


설레고 애틋하지만 항상 위태롭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반복되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열린 결말인듯 하지만, 사실은 결국 그들의 인연이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로 마무리된다.


그나저나 두나가 컴백 후 자리잡기까지 2년만 기다려달라는데 왜 원준은 받아들이지 못한 거니. 어차피 군대도 다녀올 거면서... 그가 조금만 성숙한 나이였다면... 조금만 더 약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누군가, 그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 드라마에서 빌런은 누구일까. 누구는 P를, 누구는 두나 엄마를 빌런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진주의 아버지를 빌런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최대 빌런, 모든 것의 원흉은 진주의 아버지라고 본다. 원준의 관점에서는 그 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를 소울메이트라 부르던 원준과 진주.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원준은 진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지만, 진주는 그 뒤로 그와 거리를 둔다.


수능을 망친 진주가 재수를 해야했던 탓도 있지만, 사실은 잔인할 정도로 두 딸을 통제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원준의 고백을 받은 날,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언니의 머리를 가위로 잘라버리는 아버지를 보고 진주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는다. 그리고 원준을 좋아하면서도 그와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 재수에 성공해 원준과 같은 학교에 입학한 진주. 지독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과외에 카페 알바까지 투잡을 뛰면서 돈을 모은다. 긴 머리에서 짧은 단발로 변신한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굳은 결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집을 나온 진주는 그제야 자신의 진짜 마음을 원준에게 밝힌다. 하지만 사랑은 타이밍. 진주의 등장 이후 감정의 혼란을 겪던 원준은 이미 두나에게 기울어진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진주에게 너무도 좋아했기에 겨우 추스렀던, 그렇게 과거의 감정이 되어 버린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많이 좋아했었어. 과거형의 고백에 진주 역시 힘겹게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겠노라고 원준에게 말한다. 원준과 더 가까워지고자 그와 두나의 쉐어하우스에도 들어갔지만, 그렇게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해 떠난다.




진주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원준과 진주의 타이밍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두나와 원준의 힘겨운 사랑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천성이 착한 원준은 그런 상황이라도 두나의 친구로서 변함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테지만, 그렇게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테지.


감정의 변화를 힘들게 겪어내며 성숙해진 두나.하지만 그만큼의 힘겨움을 겪지 않고도 어느 정도 자신을 회복하고 다시 용기를 내는 해피엔딩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원준과 두나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와의 걸치고 걸친 인연으로 힘든 운명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들은 미처 알지도 못했던, 멀고 먼 인연으로 인해.





생각지 못한 인연이 완성하는 인생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는 결국 주인공 중 누구도 알지 못했던, 먼 인연으로 인해 새로운 사연이 만들어지고 꿰어지고 완성되어 간다.


그런데 이건 비단 중심 스토리에 대한 상황만은 아니다. 결국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드라마'의 구조, 완성적 측면에서도 갑작스러운 인연은 빛을 발한다.


드라마 중반부터 등장하는 최이라는 원준과 태어날 때부터 친구이자 원수. 초등학교 시절 외국으로 떠난 이라는 원준과 같은 대학을 다니던 중 우연히 미팅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녀는 두나, 원준, 진주 등 메인 주연 3인방과 여러모로 반대되는 인물. 시니컬한 두나와 달리 활기 넘치고 엄청난 친화력을 자랑하며, 원준이나 진주처럼 생각이 많고 신중하고 그렇게 조심하다 사랑을 놓치는 이들과는 달리 직설적이고 감정에 솔직하다.



연속되는 눈물 젖은 고구마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상황에서 이라는 확실한 사이다가 되어준다.


원준과 두나, 원준과 진주 사이의 설렘과 밀당이 점차 본격적인 스토리로 치달으려는 순간 등장한 이라는 이제 심각해지고 가슴아파지는 스토리의 한 가운데에서 루즈해지거나 과도하게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의 균형을 잡아준다.


주요 3인의 감정선에 공감과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끼는 우리를 대신해 그 자체로 이들의 사랑에 대한 충고(충고의 의인화)가 되어준다. 무엇보다 처음의 푸릇하고 설레는 감정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적절히 색상과 채도를 조절해주는 역할.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배우 박세완이 맡은 역할이라 특히 주목했는데, 원래 그런 엉뚱하고 밝은 캐릭터에 강점이 있는 그녀의 매력을 십분 살린 듯하다.


웹툰과 달리 드라마에서 이라는 딱히 없어도 스토리 진행에 큰 문제 없는 인물. 주요 3인의 사랑 이야기에 특별한 지분이 없지만, 그럼에도 결국 드라마의 맥을 이어가며 완성도를 높이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물 한두 살, 아직 어린 나이의 먹먹한 사랑 이야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눈물은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슬픈 사랑을 마주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전엔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이두나는 내게 보는 내내 먹먹하고 가슴이 아픈 드라마였다. 마치 나의 스물 한두살 시절 철없고 찌질하던 사랑과 이별의 기억들로 돌아간듯, 그 때 그 당시의 아팠던 마음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 마음들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인물들을 보면서는 그 감정이 '몇년 후'라는 작중 시간의 흐름 뒤에도 여전히 아프게 느껴진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시간의 간격이 실제로는 몇 분 후, 며칠 후에 불과하니까.


누군가에게 그때의 사랑은 살짝 미소짓게 하는 어린 풋사랑일 수도 있고, 그 어떤 사랑보다 심각하고 무겁고 순수한,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감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대부분 흘려보낸 추억이라는 것.


그래서, 어린 것들... 그래 그때는 그게 전부니까... 라고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드라마인데, 그들의 모든 사연이 엮이고 엇갈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가슴이 먹먹해진다.


*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이두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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