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차가 갖고 싶어(1)
성이의 첫 공연은 바로 다음 날 시작됐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손님이 많았다. 성이가 오픈 때부터 패리와 함께 일을 시작하고, 나도 급식실 일을 다 끝내고 8시 반쯤 도착해서 일을 도왔는데도 손이 모자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손이 몇 갠데, 이런 날 대박 쳐야지. 너희 오는 날이니까 일부러 단골들 다 꼬셔놨다.”
의아해서 물었더니, 패리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뭐라고 꼬시면 이렇게 많이 와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어제 물어봤잖아요? 우리가 뭐라고 대답할 줄 알고……”
“아는 동생이 오늘부터 노래할 거라고 한 번 와서 봐달라고 그랬다. 너희는 어차피 올 애들이라고 생각했고. 반응이 괜찮아서 장사 좀 될 줄 알았지.”
빠른데다 정확하기까지, 역시 계산은 확실한 사람이었다.
성이의 공연이 계획된 10시가 되자, 패리는 어김없이 고등어를 굽고 있던 성이를 불렀다.
“시간 됐다. 기타 메고 앞에 나가.”
성이는 앞치마를 벗고 손을 씻은 뒤, 근처에 세워둔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연습실에서 굴러다니던 기타에 비해 그쪽은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관리가 잘 된 기타였다. 진짜 성이의 기타를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형이 소개 같은 거 안 해줘?”
기타를 메고 앞으로 나가기 전, 성이가 패리에게 물었다.
“이제 여긴 네 가게야. 이건 순전히 네 공연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다 알아서 하는 거야. 소개를 하고 가든, 그냥 시작하든 너 내키는 대로 해. 바쁜데 말 시키지 말고 얼른 나가서 시작해.”
산낙지를 썰고 있던 패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제육볶음이 담긴 접시를 들고 서빙을 나가던 나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두 사람을 흘깃 바라봤지만, 패리의 말이 뭔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성이도 몇 초쯤 망설이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는 앞으로 나서고 말았다.
성이가 앞에 나서자 포장마차 안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어깨가 살짝 움츠러든 성이는 그 분위기가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녀석 성격에 인사 멘트를 하고 시작할 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주위가 조용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녀석으로서는 무턱대고 기타를 치기 시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녀석은 계속해서 얕은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을 뿐 쉽게 기타에 손을 얹지 못했다. 그때, 한 테이블에서 박수 소리가 시작됐다. 그리고 곧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더는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성이가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으며 드디어 기타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첫 곡은 윤도현 밴드의 ‘너를 보내고’였다. 의외의 선곡이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여자노래 부르는 건 좀 무서웠겠지.”
산낙지가 담긴 접시를 내밀며 패리가 말했다. 패리가 건넨 접시를 받아 서빙을 나가며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성이를 살폈다. 첫 소절부터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래가 조금씩 진행될수록 그 떨림이 오히려 노래를 살리는 것 같았다.
성이의 여린 목소리로 듣는 ‘너를 보내고’는 묘했다. 슬펐다.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살아서 슬픈 감정을 타고 흔들리는 것 같았다. 떨리는 목소리와 달리 안정적인 기타는 그렇게 감정이 깊어 흔들리는 노래를 멜로디 라인 안에 차분히 잡아두고 있었다. 마치 의도라도 한 듯 움츠린 어깨, 그리고 겁먹은 눈빛과 어우러져 그의 노래는 더욱 슬프게 들렸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성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며 손님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다음 곡을 이었다. 라디오 헤드의 ‘Creep'이었다. 거칠고 지친 느낌 대신, 몽환적이고 깊이 삭혀진 슬픔의 기운으로 녀석은 그 노래를 소화했다.
성이의 노래가 두 곡 연달아 이어지는 동안, 포장마차 안은 움직임도, 소리도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산낙지가 나간 이후 손님들은 술도, 안주도 찾지 않았다. 이따금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정말 가끔이었다. 그마저도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비워버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Creep'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더 커졌다. 성이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목례를 하고 패리를 바라봤다. 여전히 굳은 얼굴이 눈으로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다. 패리는 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버렸다. 성이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나 패리가 다시 고개를 젓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성이는 잠시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러자 몇 사람이 다시 박수를 쳤다. 그 박수 소리를 신호로 하듯 성이가 다시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Delight였다.
그의 노래와 함께 백열전구의 빛이 서서히 부서져 내렸다. 조금 전까지 공중에 퍼져나가 공간을 채우던 빛이, 서서히 부서져 내리며 사람들의 얼굴과, 술잔과,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그야말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 여느 때와 다르게 떨어져 내리는 빛을 받으며 사람들의 얼굴이 꿈꾸듯 멍해지는 것이 보였다.
환희, 혹은 축복과도 같은 빛이 어느새 포장마차 안을 가득 채우고, 그렇게 빛의 길마저도 흩트려 놓는 성이의 노랫소리가 공기를 적셔나갔다. 노래가 끝난 후 성이가 목례를 하고도 몇 초 동안 사람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다 성이가 한숨을 쉬며 패리를 향해 고개를 돌릴 즈음, 앞선 것보다 훨씬 큰 박수를 보내왔다. 패리도 이번에는 성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제야 성이는 힘겹게 웃어 보이며 어깨에 멘 기타를 내려놓았다.
“잘했어.”
조리대로 돌아오는 성이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성이도 기분 좋은 듯 다시 밝게 웃었다. 성이의 공연이 끝나자 포장마차 안은 다시 분주해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손님들이 다투어 안주와 술을 시켰고, 아껴둔 말을 한꺼번에 털어놓는 소리에 주변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앞치마를 메지 못한 성이는 손님들이 술을 시키는 소리에 곧장 소주를 들고 뛰어나갔다.
“대성공이다.”
패리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한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니야. 저길 봐.”
패리가 고개를 저으며 손님들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순간,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녀석이 손님이 따르는 술을 받고 있었다. 성이가 첫 노래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박수를 친 사람이었다. 성이가 처음 보는 사람의 술을 받는다. 그것도 무척이나 밝은 얼굴로. 게다가 뭐라고 말도 주고받고 있었다.
성이가 그에게서 술을 받는 모습을 보자 다른 손님들도 녀석을 불러 술을 따라 주었다. 녀석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손님들이 따르는 술을 모두 받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성이가 저 술을 다 받아먹고 멀쩡할 수 있을까요?”
“걱정도 팔자다. 성이도 어지간히는 술 먹을 줄 아는 놈이고, 만에 하나 저 자식 취해도 평소에 나 혼자 하던 일 너랑 둘이 하는데 일 안 돌아가기야 하겠냐?”
패리는 내 말에도 그렇게 그냥 웃고 말았다. 급하게 거푸 받아 마신 탓인지, 테이블을 한 바퀴 돌고나서는 어지간히는 마신다는 성이도 상당히 취기가 올랐다. 결국 녀석은 그 밤, 스스로 앞에 나서 두 곡의 노래를 더 불렀다. 녀석의 노랫소리는 취한 뒤에도 제법 듣기 좋았다.
* 원고는 이미 한참 스페어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어제 갑작스러운 PC 문제로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는 미리 예약글로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찾아와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