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터널앞에서

자식 농사란?

by 바람꽃


까다로운 사춘기


아이의 분노가 폭발하고 반항하는 시기는 일시적입니다. 부모가 공격성에 놀라 겁먹고 물러나지 않으면 터널처럼 지나갑니다. 그 시간을 지나가야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서천석 <우리 아이 괜찮아요>


육아에 대해서라면 사실 나도 할 말이 참 많다. 단지 아는 것에 대해서라면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결코 지식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인간은 한 우주이고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한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물며 자식은 어떨까. 옛말에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는 것처럼 어쩌면 같은 이유로 우리에게 자식 키우기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 아닐까.


태풍을 견뎌낸 사과처럼


얼마 전 귀농한 친구가 보내온 영상에는 태풍을 견뎌낸 사과 하나가 주인공이었다. 태풍을 기어이 견뎌낸 자식 같은 사과, 붉고 윤기 나는 사과가 여린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격하게 흔들렸다. 수년의 비바람을 이겨낸 엄마 나무는 해마다 새로운 열매들을 맺고 키워낸다. 동영상 저편에서 들려오는 세찬 바람소리에 나도 이리 가슴 조이는데 그걸 버텨내는 사과의 마음은 농부의 마음은 또 어떨까. 나 역시 비바람에 끄떡없이 강인한 엄마이고 싶다. 가지가 메말라 부러지지 않게 사랑이라는 양분으로 촉촉이 적셔주고 푸른 잎들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에서는 언제든 내 아이가 쉴 수 있게, 때론 모질고 때론 포근한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치근대지 않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나 역시 그 길에서 강하지만 따뜻한 부모이고 싶었다.


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


딸아이는 이제 겨우 만 12세, 이 땅에 태어난 지 고작 12년째다. 어른 몸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을 품고 사느라 스스로 어른인지 아이인지 헷갈리는 나이. 선생님도 부모도 편의에 따라 수시로 어른스러움을 요구하지만 어른의 자유는 보장받을 수 없는 불공평하고 난처한 나이. 덕분에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 역시 사춘기 부모가 되어 고민하고 방황하며 심지어는 처절하게 싸우느라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랑이고 교육인지 아이도 부모도 둘 다 어렵기만 하다.


엄마의 시행착오


육아도 학습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물론 책을 통해 얻은 지식도 매우 유용했지만 이를 적재적소에 적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육아에도 1만 시간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일정 시간 속에서 갈등과 해소의 경험치가 어느 정도 내공이 되어 쌓여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많은 경우 이제 좀 수월하다 싶으면 자녀는 어느덧 성장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아이도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를 거처 이제는 사춘기의 터널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책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 비록 책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방향을 잃을 때마다 책을 펼치곤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녀석과 가볍게 한바탕 한 후 서천석 님의 책을 다시 꺼내 보다 문득 눈에 띈 구절을 옮겨왔다. 마치 피곤할 때 단맛이 당기는 것처럼 어쩌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인듯하다. 사춘기 아이의 반항은 일시적이고 내가 겁먹고 물러서지만 않는다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가족이란


고개를 돌리니 창밖에 이름 모를 꽃 세 송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지난날엔 오후 한 차례 비바람이 몰아쳤고 오늘 보니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인데도 서로 꼭 깍지 끼고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가족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 하나 잘났거나 못났어도 서로 으스대지도 탓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버티는 날들이 더 많은 것, 딸아이도 지금 이 터널을 다 지날 때 즈음 알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아빠가 녀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