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제일 만만해
물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토끼를 잡으면 덫을 버리고 말의 뜻을 알았으면 그 말은 버려라.(筌者所以在渔,得鱼而忘筌;蹄者所以在兔,得兔而忘蹄;言者所以在意,得意而忘言)-장자-
사춘기 딸아이와 나쁜 말이 시작되면 대체로 바닥을 보고 말던 시절이 있었다. 얼음장 같던 녀석은 비수 같은 말로 어미의 가슴을 후벼 파고선 눈물 단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획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하는데 나는 그런 딸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내가 낳은 새끼가 맞는지 하염없이 눈물을 삼키곤 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는 아이대로 긴 시간 원격 수업에 지쳐있었고 나는 나대로 아이의 짜증을 견디며 삼시 세끼 딸아이 시중에 무기력해진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며 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오전 중 이미 나쁜 말 배틀 1 라운드에서 내가 패배한 후였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쿨하게'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우리 딸,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녀석은 마치 내가 시비라도 건 것처럼 "왜?" 하고 노려본다. "아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봐도 될까?" 부드러운 내 말투에 "네"라고 대답하는 녀석. "우리 딸은 밖에서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짜증도 안 내는데 엄마한테는 말을 좀 이쁘게 안 하는 것 같아. 왜 그럴까?" 이미 충분히 우회하며 조심스레 묻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밥그릇만 내려보던 아이도 한결 숨 고르게 대답한다. "엄마니까......" 나는 순간 멈칫했고. 정적 속에 분주한 젓가락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너는 내가 만만하구나.' 나는 곧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선 씹고 또 씹어본다. 이내 단 맛이 느껴지고 내 눈앞에 산 만한 아이가 문득 안쓰럽다. '라떼는' 어땠던가?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나는 꽤 자주 '덜 마른 교복' 때문에 엄마에게 폭풍 짜증을 냈었다. 우리 엄마는 신기하게도 나와 약속했던 일들은 잊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나의 교재비, 학원비 또는 용돈을 잊는 법이 결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완벽한 엄마'가 아주 가끔 하던 실수가 바로 교복을 제 때 빨지 않는 것이었다. 고백컨데 사춘기 여중생이었던 나는 축축한 교복을 입으며 수없이 엄마를 탓했고 심지어 비난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나의 엄마는 그런 날에도 묵묵히 나의 도시락을 챙겨주며 학교 잘 다녀오라며 인사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채 마르지 못해 축축한 교복은 늦은 밤 일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빨래 너는 것을 잊고 잠들어버렸기 때문인 것을. 나는 알고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나쁜 말 배틀이라니. 그간 내가 딸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점심 식사가 끝나자 딸아이가 그릇을 옮기며 말을 건넨다. "사실은... 엄마가 제일 편해서 그래, 엄마는 다 이해해 줄 것 같고 그래서 그래." 먹먹해진 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종종 나쁜 말을 걸러내지 못하고 받아치던 못난 내 모습에 부끄러워졌다. 사뭇 진지해진 나는 역시 잔소리가 하고 싶었으나 최대한 짧게 우리의 대화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딸, 그래도 나쁜 말은 살살 하자 우리, 엄마도 맞으면 아프니까. 엄마도 너 속상할 말은 하지 않을게" 그렇게 우리의 나쁜 말 배틀은 점점 잊혀가는 중이고 사춘기 딸아이는 여전히 가끔은 얼음공주가 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녀석의 속마음을 떠올려본다. 역시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만만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