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찾아온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변화가 찾아온다. 얄궂게도 삶이 좀 익숙해졌을 때, 일상이 편해졌을 때 찾아온다. 내가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변화의 때가 오고 있다는 것.
곧 도래할 것을 느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내가 누리던 안온한 일상이 모조리 바뀔 것이라는 두려움. 내가 자각하지도 못한 채 누려오던 모든 자유, 선택, 당연한 것들이 이젠 달라질 것이라는 인식. 아침에 마시던 커피 한잔, 자주 먹던 음식들, 오후의 짧은 낮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나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치열하게 하루를 분투할 것이고, 다시금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 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울분이랄까.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다고 의연한 태도가 만들어지지는 않나 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내가 왜 이 변화를 겪어야 하는지. 변화를 통해 얻어낼 것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울부짖고, 후회한다.
변화는 괴로운 일이다.
데미안에서 말하듯이, 변화는 곧 '나'라고 인식했던 것과 세상이라고 믿어왔던 껍데기를 깨뜨려야 하는 고통이다. 때문에 변화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지금 나라는 존재의 상실을 예고받는 것이다. 당연히 두렵다. 당연히 울분이 차오른다. 분명 변화 이후에도 '나'는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지금의 나'가 아닐 것을 알기에. 또 그 상실을 알아차렸기에 괴롭다.
이제는 아침에 커피향을 머금을 수 있는 내가 좋다. 가끔은 알코올에 져 주며, 친구들과 시답잖게 웃어대는 내가 좋다. 유별나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기어이 지루함보다는 새로운 웃음을 지어낼 줄 아는 내가 좋다. 이 모든 것들이 남아있을까.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내가 겨우 찾아, 겨우 만들어낸,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들이, 세상이 깨어져나가도 다시금 나를 감싸는 일부로 남아줄까.
어쩜 이리도 미숙한지. 여전히 나는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던 어린아이일 뿐이다. 도대체 저 칠흑의 우주 바깥으로 나갈 자신이 없다. 저 우주를 깨부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가 아무리 지금의 일상과 내 모습을 지키려 해도, 세상의 이치가 이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바뀐다. 사회와 제도가 바뀐다. 인식이 바뀐다. 기술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그 무엇이 영원하겠는가. 우리는 결국 지금만 누릴 수 있는 인생의 한 순간을 살고 있는 것뿐이다.
심지어는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빨리 변화한다. 몇 년 전과 지금의 삶을 비교해 보자.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게 없다. 코로나, SNS, 키오스크, AI까지. 적어도 내 삶동안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가치들, 직업관, 윤리관들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 어디에 온전한 게 있는가? 모두들 그저 이 불안으로 가득한 미래가, 최대한 늦게, 적어도 나에겐 오지 않기를 빌며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특이점이다. 폭풍 전의 고요함. 세상의 변화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변화를 마주해야 할 때다. 이미 충분히 외면해 왔다. 이미 충분히 미뤄왔다. 내가 한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든. 삶의 굴레는 이제 더 이상 뒷걸음질을 허락하지 않는다. 낭떠러지 끝에 서서 뒤를 돌아보는 일은 이제 무의미하다.
두렵지 않다고, 괴롭지 않다고 말하지 않겠다. 의연한 척 무표정을 짓기엔 우리는 너무 연약하다. 다만 너무 오래 절벽 앞에서 서성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배워온 것들을 믿자. 우리가 체득한 태도와 지혜를 믿자. 부서질지라도, 나는 다시 나일 것이다.
묻고 싶다.
변화를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