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에 마음을 담은 아이들

멀지 않은 옛날 학교이야기

by 바람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이 지난 학교에서 만난 일들을 한 편씩 써볼까 합니다. 아이들이 가르쳐 준 일들이 참 많네요. 어른들은 놓치고 지나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행정실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다. '내일(토요일)에 학교에서 자격증 시험이 있을 예정이니 종례후에 교실 정리와 함께 책상을 시험대형으로 배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주말에 교실을 빌려주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른 담임선생님들이 학생들 불평을 걱정하며 교무실을 나선다.

교실에 가서 녀석들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내일 학교에서 무슨 시험이 있다고 하더라. 청소 마칠 때 책상 담당 친구들은 시험 대형으로 자리를 배치해줄래? 아, 그리고 책상 속에 있는 개인 물품은 사물함으로 옮겨주세요."


아이들이 반응한다.

- 쌤! 무슨 시험이예요?

- 어.. 자격증 시험이라는데 잘 모르겠네.

- 누가 보는데요?

- 글쎄? 자격증이 필요한 사람이겠지?

- 중요한 시험이예요?

- 아마도?


불평은 커녕 이렇게 궁금한 게 많다. 한 녀석이 주제를 바꾼다.

- 야~ 자기 책상 위에 낙서한 것도 다 지워야 해.

- 맞아!

- 중요한 시험인데 우리 때문에 컨닝한 것으로 오해 받으면 큰일이지.

- 깨끗하게 지워.


중학교 2년 째 학교 생활의 노하우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이 녀석들은 시험 중 부정행위에 대한 지침을 많이 듣고 있는 중이다. 책상의 낙서지우기는 시험 전날 필수 과정이다. 우리 반의.

책상 위를 지우는 손이 바쁘다. 지우개 빌리는 소리도 바쁘다.

'오빠'들에게 한 사랑 고백, 하트 그림, 필담 나눈 흔적들 등등이 지워지는 중이다.

종례 만큼은 빨리 해치우고 교실 밖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던 녀석들인데 말이다.

또 다른 녀석 등장.

- 나는 시험 잘 보시라고 응원 편지 써야겠다.

- 바보냐? 낙서하면 안된다고!

- 아...

-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두면 되겠네.

- 아!!

- 나도 쓸래, 포스트잇 있는 사람~

- 나 예쁜 거 있어, 줄까?

- 나도 쓸래.

- 내 것도 가져다 주마.


좀 전에는 지우개가 건너다니더니 이제는 화려한 포스트잇이 건너다닌다.

구경하는 나를 깨우는 외침소리가 들린다.

- 쌤!! 무슨 시험인지 빨랑 알아 오세요, 그걸 알아야 자세히 쓰죠.


이젠 명령까지...하하하하.

그동안 자신들은 청소하고 책상 배열하겠단다.

종례 마치면 청소당번만 남고 다 사라지는 녀석들이 청소도 다같이 하겠다니.

오냐, 다녀오마.

행정실에 가서 물으니 이상하게 여긴다. 설명을 듣고 기특하다며 알려주신다.

중국어 관광가이드 자격증 시험이라고 알려주셔서 아이들에게 전했다.

- 우아, 중요한 시험이네. 자격증 따면 취직하는데 도움되는 거죠?

- 그렇겠지?


나름 아이들 얼굴이 진지해진다.

열심히 적는다. 마치 자기들이 시험 보는 것 같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포스트잇이 떨어지지 않도록.

반장 녀석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는다.


"시험보시는 분들, 책상 위의 포스트잇은 읽으시고 떼어버리세요. 부정행위로 오해받으시면 안되잖아요.

시험 잘 보시고 꼭 자격증 따시면 좋겠습니다. 2학년 8반 일동~"


교실에 울긋불긋 포스트잇 꽃이 활짝 피었다.

34개의 책상 위에 핀 꽃들이 누군지도 모를 이들에게 잠깐의 기쁨을 주겠지.

나는 또 아이들에게 배운다.


그림17.jpg





월요일 아침,

아이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시험을 보신 분들 중 몇 분이 포스트잇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가셨다.

그 위에 답장을 쓰시고 말이다. 포스트잇을 가져가진 분들은 책상위에 '낙서'를 남기셨다.

고맙다는 낙서.

시험 중에 드시려 준비한 듯한 사탕과 초콜릿을 감사의 인사와 함께 책상 위에 두고 가신 분들도 더러 계셨다.

뜻밖의 선물을 자랑하느라 목소리들이 드높다.

진심이 전해지고 감사를 받는 것을 통해 나누고 배려하는 것의 행복을 알려주신 그분들이 고마웠다.



그림19.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란 불빛의 서점'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