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100주년 기념 시집 중
[글귀걸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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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어린아이에게 열려있다지. 고추를 내놓고도 재밌게 뛰놀 수 있는 아이들에게 열려있다지. 한 살의 나이만큼 내겐 또 하나의 부끄러움이 쌓여버렸어. 무화과 잎사귀 다섯을 주워 두 눈을 가리고 하나의 입을 가리고 두 귀를 가리고서야 재울 수 있던 쿵쾅대는 작은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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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손끝의 촉각과 숨구멍의 후각은 포기하지 못했지만 차단된 시각의 공포가 여유가 되고, 차단된 청각의 고요함이 큰 쉼이 되고, 차단된 미각의 건조함이 날 담백하게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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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를 먹자 눈이 뜨여 서로의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건 성장인게지. 염치의 감각을 배워간게지. 평화로운 에덴동산을 떠나 노동으로 제 몫을 채워가는 건 용기인 것이지 그게 어찌 죄악이겠나. 자신이 진 죄에 대한 책임을 여태껏 다하고 있는데 그게 어찌 아직도 죄악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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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화과 잎사귀로 눈과 귀와 입을 가릴지언정 내 이마는 가리지 않을 것이다. 땀 흘리지 않으면서 땀 흘리는 척 무화과 잎사귀로 내 이마를 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 보속의 현실을 낱낱이 밝힐 것이다. 죄악을 선택해 당당한 이마에 땀을 흘리는 나는 영원토록 부끄러운 원죄의 기쁜 자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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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100주년 기념 시집 중 《또 태초의 아침》의 글귀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