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불쑥 일상이 느껴질 때
2019년 5월 7일
유럽은 자동차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버스나 기차 요금이 비싸서 장기여행일수록 자동차를 리스하는 것이 더 저렴할 수 있다. 또한, 자동차가 있으면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소도시 여행도 가능해진다. 숙소도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시설과 가격 모두 좋은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차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자동차 여행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를 방문할 때마다 주차를 신경써야 하고 주차비도 꽤 비싸다. 숙소를 구할 때도 무료주차가 가능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대도시이거나 인기가 많은 여행지일수록 주차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토스카나 발도르차를 떠나 로마로 향한 우리는 주차 걱정과 차량안전을 위해 로마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캠핑장을 찾았다. 시내까지는 트램을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어서 멀지 않은데다가 캠핑장 시설또한 좋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는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리셉션은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캠핑장의 거의 대부분은 캠핑카 자리였고, 우리는 공용시설에서 조금 떨어진 텐트자리에 자리를 잡았지만 말이다.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설치하고(이제는 나름 빠른 속도로 텐트를 설치한다) 로마 시내로 나섰다. 콜로세움을 시작으로 포로 로마노, 판테온 그리고 트레비 분수까지 로마가 처음인 파고에게는 모든 유적지가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반면에 로마를 고등학생 때 여행했던 망샘을 유일하게 감동을 준 것은 그녀의 머릿속 기억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트레비분수뿐이었다.
그렇게 로마 시내를 관광하고 캠핑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트램은 로마 시내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노선이었는데 여행자는 우리밖에 없고 모두 현지인들이었다. 종점에서 탄 열차는 출발하기 전이라 불도 반만 켜져 있어 어두웠고 허름했다. 그래서일까,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일상의 피로에 지쳐 보였다.
콜로세움과 판테온에서 여행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가 갑작스레 로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와 버린 느낌이었다. 여느 대도시처럼, 로마에서의 삶도 지치고 고돼 보였다. 나도 서울에서는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그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테니까.
자동차로 여행하며 많은 여행지를 여행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다 가끔 이렇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면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생긴다. 대도시일수록 사람들의 표정에는 무뚝뚝함과 일상의 고됨이 엿보인다. 늘 똑같고 고된 일상이지만 가끔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본다면 오늘의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