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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76

우리의 마지막 캠핑

2019년 7월 1일


시간 참 빠르다. 


프랑스 안시(Annecy)에서의 첫 캠핑(Day 4 에피소드)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캠핑이라니. 안시에서 처음 텐트를 치던 때가 문득 생각난다. 어떻게든 될 거라며 겁 없이 텐트를 펼쳐놓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주변의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때가 벌써 70일 전이다. 시간 참 빠르다.

     

캠핑을 생각보다 덜 했다. 


파리에서 자동차를 인수하고 데카트론(Outdoor 전문 판매점)에 갈 때만 해도 마치 여행의 절반은 캠핑으로만 지낼 태세였다. 하지만 4월 말 새벽의 캠핑장은 뼈가 시리게 추웠고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기엔 우리는 연약했다. 


처음엔 캠핑장보다 아주 약간 더 비싼 가성비 좋은 에어비앤비를 찾아다녔고, 그러다 점점 눈이 높아져 결국 조금씩 좋은 에어비앤비에서 지냈다. 트렁크 깊숙한 곳의 캠핑장비는 점점 우리에게 잊혀졌다.  


그르노블에서 남프랑스로 내려오는 길에 잠시 쉴 겸 들렸던 작은 마을 시스테홍. 빙하가 녹은 물색과 깎은듯한 바위산이 멋있다. 클라이밍도 하던 곳
34도에 텐트를 치는 무(식)한도전을 했다.

   

차를 반납할 때가 다가오자 생각보다 조금 쓴 캠핑장비가 아까웠다. 큰돈 주고 사서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한국으로 보내자니 운송비가 상품가격만큼 나올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 카페에 중고장터로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우리가 가진 모든 캠핑장비와 조리도구 일체를 포함해 우리가 산 가격에 절반 정도에 파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났지만, 생각보다 구매자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반쯤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팔리면 좋겠지만 안 팔려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그러다 우연히 우리처럼 세계여행을 하는 부부가 파리에서 캠핑장비를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분들에게 연락하니 마침 남프랑스로 곧 내려오실 예정이라고. 하늘이 우리의 캠핑장비를 버리지는 않으셨다고 생각했다. 7월 초에 그분들이 남프랑스로 내려오면 우리의 캠핑장비를 양도하기로 했다.     


막상 양도할 날짜를 정하니 캠핑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우리가 여행할 남프랑스는 7월이 극성수기라 숙박비가 무지 비싸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쉬운 마음과 숙박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베흐동 협곡에 있는 캠핑장을 찾았다. 극성수기인지라 캠핑장도 매일 매일이 풀부킹인 상태였다. 예약은 이미 꽉 찬지 오래고, 당일날 방문해봐야 자리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라 여러 캠핑장을 후보로 알아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캠핑장부터 방문했다. 일찍 캠핑장에 도착해서 인지, 다행히도 자리가 있었다.    

 

이제 텐트 치는 건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다. 텐트를 마지막으로 친 게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갔지만, 몸은 텐트 치는 법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한시간반 동안 땡볕 더위의 낑낑거리며 텐트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텐트를 치는 곳의 바닥이 돌바닥이라 텐트를 고정하는 핀이 땅에 박히질 않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잘 풀린다 했다. 결국 끝까지 못 받은 핀들은 텐트 주위에 있던 돌들을 올려두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그제야 텐트 치는 자리에 올려두기 딱 좋은 사이즈의 돌들이 왜 모여져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90일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에서 우리의 11박을 책임져준 캠핑장비들은 베흐동에서의 캠핑을 끝으로 새로운 부부여행자들에게 양도되었다.


캠핑장에서 1분만 걸어가면 도착하는 생트크와호수. 몰디브에 밀리지않는 비주얼이다.
다음날 캠핑장에서 유부초밥까지 싸서 피크닉을 왔다. 수영하기도 좋은 생트크와 호수! 캠핑하길 정말 잘했다.
처음엔 너도나도 달려나가 경비행기를 찍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나중되니 시큰둥해지던 서양인들. 다들 좋아하는건 비슷한가보다.
처음 캠핑장비 살 때 돈을 조금 더 주고서 팔걸이 있는 의자를 사기를 얼마나 잘했던지!
휴대용 전기밥솥과 전기쿠거만 있으면 우리는 천하무적이었다.
아침마다 씻지도 않은채 나와 요가를 했던 순간이 가장 좋았다. 평화로운 물과 시원한 그늘아래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베르동협곡에서 '10,000키로'를 달성한 로엥이! 무탈하게 우리와 유럽을 누빈 로엥이 고생했다.
<90일 유럽자동차여행> 마흔세번째 도시. 프랑스 베흐동협곡(Ve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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