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도시 여행
2019년 4월 18일.
아시아를 떠나 유럽 여행을 시작한 후 친구들이 종종 여행 일정을 물어보곤 한다. 휴가 때 유럽을 여행할 거라면서. 그럴 때마다 답변을 잘 해주지 못한다. 일정이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해진 일정은 딱 두가지 뿐이었다. 4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차를 인수하고 7월 15일 다시 프랑스 파리에서 차를 반납하기. 그래도 대략적인 나라별 일정은 있지 않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것 또한 대답은 "No"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프랑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것 말고는 정해진 게 없다.
그래서 우리도 몰랐다. 파리를 떠난 다음날 우리가 '트와'라는 작은 도시에 머물게 될 줄은. 한국어로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 마을의 영어이름은 Troyes. 동네 이름도 말하기 어려운 프랑스 소도시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가 차를 리스한 후 첫 행선지이자, 첫 소도시 여행지인 ‘트와’에서 우리는 2박을 했다.
이곳에서의 이틀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Airbnb 호스트 엘케아주머니 덕분이다.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인상으로 우리를 반겨주신 아주머니는 긴 여정에 피로했을 우리에게 초콜릿부터 먹으라고 건내주셨다. 포장부터 고급진 맛있는 초콜릿이었는데 우리가 잘 먹는 모습을 보시더니 봉지째 내어주셨다. 마실 것도 주신다기에 아내는 와인을 나는 물을 청했다. 그렇게 거실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머니는 5년전 두번째 남편과 사별하신 후, 슬하에 20대 초반에 아들이 있다고 했다. 시골마을에 넓은 집에서 혼자 지낼 어머니에게 아들은 Airbnb 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2년 전부터 게스트들과 교류하며 지내시는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좋으시다고 했다. 몸이 불편해서 멀리 여행은 못 가지만, 이렇게 집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을 만나 여행을 하고 계시다고. 아주머니는 휠체어에 탄 채 생활해야 할 만큼 몸이 불편하셨지만, 늘 밝게 우리를 대해주셨고 게스트인 우리와 교류하기를 즐기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배가 고파져서, 부엌을 사용해도 되냐고 여쭤보니 본인도 저녁을 만들 예정인데 부엌이 좁으니 우리 것까지 같이 만들어 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저녁만찬은 1차로 오믈렛과 빵, 와인을 마신 후 2차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치즈와 와인을 먹고, 마지막 디저트로 설탕에 절인 딸기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후, 휘핑크림으로 마무리했다. 마신 와인과 치즈만으로도 숙박비를 훌쩍 넘을 것 같은 느낌. 무엇보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감사했다.
다음날 아침, 5성급 호텔 조식처럼 고급스럽게 차려진 식탁에는 9첩 반상이 아닌 9가지 Tea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로아상과 뺑오쇼콜라와 함께. 크로아상이 너무 맛있어서 프랑스는 소도시에 있는 빵집조차 맛있는 줄 알았더니 직접 베이킹하신거란다. 휠체어에 타신 채로 아침부터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셨을 아주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국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하니 소녀처럼 기뻐하신다.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하시는데 아직 한국음식은 한 번도 드신적이 없다고.
그렇게 준비하게 된 점심상. 한인마트에서 산 사골곰탕과 떡국떡에, 지단을 만들고 김가루를 올리니 그럴듯한 떡국이 만들어졌다. 남은 떡으로 떡볶이 까지 만들어 김치와 함께 차려드렸다. 떡국과 김치가 입에 맞으시는지 국물까지 다 드신걸 보고 괜히 뿌듯했다.
우리의 마음이 전해져서 일까, 아주머니는 그날 저녁 프랑스식 저녁을 우리에게 대접해 주셨다. 일곱종류의 치즈와 푸아그라 요리로. 치즈를 잘 모르지만 고급진 치즈는 빛깔부터가 달랐다. 치즈를 잘 좋아하지는 않는 나조차 모두 맛보고 싶게 만드는 치즈와, 푸아그라 요리까지.
정해진 일정 없이 우연히 방문하게 된 프랑스의 작은 마을 트와에서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