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뚜벅이 여행자로
2019년 7월 15일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로엥이를 인수하여 파리 7구에 있는 숙소로 향하던 드라이브가 기억이 난다.
나름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자부하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뒤에 초보운전 스티커라도 붙여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길들과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는 교통체계 속에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한 시간여만에 숙소 앞에 주차할 수 있었다. 거리에 주차하면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가져간다는 여행자들의 후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때라 서둘러 숙소에서 짐을 빼서 차에 실었었다.
세 달 만에 로엥이와 함께 파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현지인들처럼 카메라가 없는 구간에서는 과속도 조금 하고 흐름이 좋아 보이는 차선으로 요리조리 운전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주차된 '로엥이'에게 별일은 없었나 확인을 하고, 관광지에 주차할 때는 늘 마음 한 편이 불안했지만 말이다.
90일 동안 로엥이와 함께 많은 곳을 다녔다. '로엥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정들이다. 차가 있었기에 숙소를 우리가 원하는, 좋은데 저렴한 곳에 잡을 수 있었고, 차가 있었기에 늘 여유롭게 우리의 일정에 맞추어 이동할 수 있었다. 차가 있었기에 무거운 짐을 메지 않아도 됐었고, 차가 있었기에 아이스박스에 먹을거리와 한식재료를 넣어 다닐 수 있었다.
차를 반납하는 날 처음으로 '로엥이'를 데리고 세차장으로 향했다. 더러운 상태의 차를 반납할 경우 청소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시트로엥의 안내 문구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는 나름 차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내부청소만으로도 충분했을 거다. 그럼에도 반납하기 전에 깨끗하게 세차를 해서 보내고 싶었다.
숙소 호스트인 미쉘 아주머니가 근처에 자신이 가는 셀프세차장이 있다며 직접 같이 가주셨다. 손수 장화를 신고 같이 와주신 미쉘 아주머니는 자신이 빨리 세차를 잘한다며 우리를 나가 있게 하고 직접 세차를 해주셨다. 아주머니는 모르셨을 테지만 우리는 그렇게 로엥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세차를 3인 1조가 되어 기똥차게 끝냈다.
로엥이를 반납하고 터키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나는 처음 로엥이를 운전했던 날처럼 얼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 세차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들을 연발했다.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사고를 내면 안 된다는 마음에 긴장했던 모양이다. 공항에 있는 시트로엥 사무소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긴장했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로엥이를 반납하고 다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터미널로 향하는 길 오랜만에 매는 배낭이 익숙지 않다. 배낭의 무게감은 뚜벅이 여행자로의 귀환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더는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차도, 주차장을 걱정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 지금 우리는 다시 뚜벅이 여행자로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