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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30

백수부부의 두브로브니크 미담

2019년 5월 16일


자동차로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히치하이킹을 하는 여행자들을 보게 된다. 팻말에 자신이 향하는 목적지를 쓴 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는 히치하이커들을 보면 우리 차에라도 태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뒷자리까지 가득한 짐들과 혹시나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늘 도움을 주지 못했다.


자동차여행을 하다 보면 히치하이커들을 종종 도로 위에서 마주하지만 뒷자리까지 짐이 가득 인 우리는 늘 그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여행 이틀차, 일몰 시각에 맞춰 두브로브니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스르지산에 방문했다. 차가 있는 우리는 손쉽게 전망대에 올라왔지만 요즘 케이블카를 운영하지 않는 바람에 뚜벅이 여행자들은 비싼 택시비를 주고 이곳에 올라와야 한단다. 가뜩이나 물가가 비싼 두브로브니크에서 택시로 이곳을 왕복하면 비용이 꽤나 나오겠다 싶었다.  

   

스르지산에서 내려다보는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아드리아해의 푸르른 바다와 올드타운을 둘러 쌓고 있는 오래된 성벽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우는 주황색 지붕까지. 여기에 저물녘에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고 장관이었다.


스르지산 전망대에 오르면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이 한 눈에 펼쳐진다

그렇게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의 모습을 요리조리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태국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그들도 옆에서 사진을 찍다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때 "코쿤캅"이라고 해서 태국에서 온 줄 알게 됐다) 조금은 수줍게 말을 건 그녀는 우리에게 올드타운까지는 어떻게 내려가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우리는 차로 내려가"라고 답변했다. 말을 건 소녀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친구를 보며 '뭘 그런 걸 물어, 그냥 우리끼리 가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대답을 들은 소녀는 별 대답 없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친구와 걸어갔다. 

    

처음에는 왜 우리한테 어떻게 내려가는지 물었을까에 대해 의문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 소녀는 택시를 타고 올라왔으며 택시비가 비싸니 우리와 함께 택시비를 분담하려고 물어본 게 아니었을까. 그 생각이 들자 그들에게 '우리 내려갈 때 우리 차로 같이 내려갈래?'라고 말하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물어봤을 소녀가 안쓰러워질 때쯤 저 멀리 산 언덕을 걸어 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와 나는 그간 마주쳤던 히치하이커들, 그리고 방금 그 소녀들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번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꼭 도움을 주자는 이야기와 함께.  


(좌) 스르지산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우) 전망대를 내려가는 길에 보았던 멋진 노을

   

그렇게 스르지산에서 일몰을 보고 해가 어둑어둑해질 때 즈음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차로 내려가고 있는데 저 앞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외길인 차도로 내려가는 차를 피해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아슬아슬해 보였다. 창문을 열고 내려가는 길이면 우리가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녀들은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우리 차에 탑승한 두 분은 마침 우리 숙소와 매우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던 분들이었다. 차로는 10분 만에 갈 수 있지만 걸었으면 1시간도 넘게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그들을 내려주고 숙소로 올라가는 길, 아내와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백수부부는 이렇게 두브로브니크에 미담을 남겼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아름다운 뷰와 가성비를 자랑했던 우리의 에어비앤비 숙소
(좌) 호스트의 반려견 미스티는 다이어트가 꼭 필요해보였다. (우)주차장에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 다섯마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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