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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Sep 27. 2017

"바람타고" 리모델링 : 새로운 도전, 팔라완

2017.04.07

여행기간 : 2016.5.1 ~5.6
작성일 : 2017.4.3
동행 : 촬영팀 후배 "초이"와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21:00 김해국제공항. 마닐라행 필리핀 항공편


저녁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김해국제공항 청사로 들어섰다.


청사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출국장 오른쪽 거의 끝부분에 필리핀 항공 보딩패스 발행 부스가 여러개 늘어서 있다.
그렇게 나와 후배 "초이"는 느닷없이 팔라완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 둘은 과하다 싶은 정도로 많은 사진 촬영 장비를 가방 가득 지고 있었다.



 

불혹


2015~2016은 인생에서의 새로운 전환기다. 
공자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고, 그만큼 "혹"하는 것들로부터 초월하는 나이가 된다고 배웠다. 막상 마흔 즈음이 되니, 그 전까지는 눈도 깜짝하지 않던 것들이 일제히 유혹으로 다가왔다. 제자백가 시대야 마흔이면 이제 슬슬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 나이였고, 그래서 불혹이 우리가 배운대로의 해석으로 유효할 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불혹은 모든 유혹이 사라지는 나이가 되었다기 보다는, 유혹에 약해지는 나이가 되었으니 잘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는 계몽적 교훈을 담은 말이라 여기는 게 더 적당할 듯하다.
보통 마흔이면 결혼 10년 차 안팎이 되고, 자식 새끼들은 아직 어리고, 머리와 몸의 노화는 현저하게 느껴질 그런 나이다. 그렇다고 인생에서 뭔가를 이뤄 놓지는 못한, 뭐 그런 나이쯤이다. 겁나는 게 없던 시절도 끝나가고 뭐 하나 시작하는 게 무섭고, 운신의 폭은 갈수록 더 줄어들 것도 뻔히 보이는... 
약간의 유혹으로도 우리네 보통 마흔 즈음의 가장들은 쉽게 흔들린다. 그게 뭐든 혹하기 쉬운 나이다. 특히 돈 앞에서는 말이다.

"바람타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기로 한 지도 몇 개월이 지났지만, 진척이 더디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전거 트레킹, 캠핑 여행 상품"이 가진 위험 요소의 제거가 쉽지 않다는 것.
두 세명이면야 별 문제없다. 대신 여행 경비가 부담이 된다는 게 문제.
그렇다고 자전거 열 대가 넘어가면 안전 문제를 완벽하게 통제하기가 쉽지않다.
나만해도 천태산 언덕에서 너무 많은 땀을 흘렸더니 내려오는 긴 활공(?) 시간에 그 땀이 식으면서 현기증이 동반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자칫 의식을 잃을 뻔 했고, 다행히 의식을 잃기 직전에 내리막이 끝나서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을 풀밭에 쓰러져 있었다.
또 집앞에서 훈련삼아 달리다가 급정거하는 앞 차 때문에 뒤집어져서 어깨 인대가 심하게 찢어져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하물려 남의 나라에서 자전거 사고는 정말 난감하고, 자칫 큰 사고라도 난다면... 사람이 다치 않는다 해도 진 자전거를 이송하는 문제와 이후 일정을 관리해야 하는 문제 등 난감한 상황에 빠질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섬 해안의 굴곡을 고려하면 보기에 따라 전 코스가 위험 코스라 해도 무방한 것을...
대마도를 정말 꼼꼼하게 답사하고, 모든 병의원 시설을 깨알같이 파악해두고, 만반의 응급조치를 취한다? 사실 현지에 거주한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깝다.

의기투합하고 모였던 친구들은 새롭게 사무실을 임대하고 
간만에 젊었을 때의 벌렁거림을 맛보고 
매일 아침 기대감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경험을 새삼 즐기면서 행복한 몇 달을 보냈지만, 
결국 해결되지 않는 난관 앞에서 설왕설래만 거듭하게 되었다.

불혹이다. 우리 셋 모두 불혹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유혹은 위험 요소를 무시하라는 꼬드김이었다. 
벌어지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을 그리면서 시작도 못하는 게 더 용기없는  스스로 합리화를 해 보기도 한다. 아니다, 그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한다면 어쩔 것인가?고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유혹에 굴복도 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날들을 겪고...
첫 시작, 즐겁게 준비하고 마련했던 "바람타고"의 스타팅 포인트인 "대마도 자전거 캠핑"은...
그렇게... 접었다기 보다는 보류키로 최종 결정했다.
마흔이니까, 정말 불혹이다.

 



그랜드 투어 & 퍼블릭 투어, 그리고 그 이전의 여행?


여행은 고통스런 일을 치뤄내는 통과의례였다. 익숙한 환경과 관계들에서 떨어져서 고행을 참아내고 단련되는 과정을 겪게 하는 건, 왕족 귀족의 자녀들에게는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봤다. 그런 훈육에서 생활 전반의 결핍을 경험하게 하는 게 바로 여행이었다. 이때도 서민층에서 여행이라는 걸 경험하는 별난 이단아들은 있었겠지만, 사실 그들의 선택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죄를 짓고 정든 곳을 야반도주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리더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훈육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여행은 돈 많은 귀족들의 유별한 사치로 발전했을 것이다.


현대의 여행 산업으로 대중화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건 숙박업소의 탄생이 크게 일조했다 한다. 집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일탈의 즐거움으로 바꿔줄 수 있는 이런 여행의 인프라들은 여행을 특별한 상품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 즈음 여행은 크게 "그랜드투어"와 "퍼블릭투어"라는 양대 현상으로 분리되었다 한다. 화려한 그랜드투어는 과거 귀족들의 유별난 사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고급 상품들로만 구성되었지만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산업화하기에는 여가를 즐기는 중산층의 대중적인 유행이 수반되지 않고는 어려웠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유사 그랜드투어가 태동하게 된다. 그것이 퍼블릭투어란다.
그렇게 그랜드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여행 경비를 낮추는 퍼블릭 투어 상품의 개발과 판매는, 여행을 통해 낯선 문화와 지리를 만나는 쾌감을 대중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패턴과 질이 완전히 달랐던 여행의 이러한 두 흐름은 서로 경쟁하고 자극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퍼블릭한 시간과 경비로 그랜드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랜드하게 포장한 퍼블릭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게 바로 "패키지여행"이라 불리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랜드하든, 퍼블릭하든 다시 여행이 분화되어 기존의 스케줄링된 것에서, 현지의 문화를 체험하거나 현지의 생활을 경험하거나, 그랜드하지도 퍼블릭하지도 않은 유니크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확산되는 것 같다.
기본적인 인프라(항공등의 교통과 숙박)만 미리 예약하거나 이 조차 현지에서 그때그때 해결하고 나머지는 그랜드 투어 태동 이전, 그러니까 고행이나 수행과 유사한, 자신과 세계를 다이렉트로 마주 서도록 유도하는 방향성을 견지해 가고 있다. 이런 흐름이 탈 패기지여행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긴 하나, 유사 패키지의 일환으로 <에어텔> 같은 이름으로 진행되는 상품도 포함한다. 업계에서는 에어텔을 자유여행과 동일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 개념도 점차 설자리를 잃을 정도로 여행의 패턴은 더욱 자유롭게 분화하고 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여행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행까지는 아닌...
주마간산으로 내가 찍은 사진 말고는 어디가 어딘지, 왜 갔는지도 모를 여행이 아니라,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행을 대중적으로 좀 더 수월하게 접근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실패와 좌절도 많았던 길이긴 하다.

 



새로운 도전, 팔라완


우린 대마도 자전거 캠핑을 보류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토론으로 보냈다. 
여행의 형태와 이유도 중요했지만, 여행지 선정도 중요했다.
그러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곳이 "팔라완"이다.

솔직히 처음엔 팔라완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EBS에서 우연히 본 "팔라우"와 헷갈리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팔라우"와 헷갈려하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축이고, 듣보잡이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가수 윤도현이 신혼 여행지로 다녀갔다는 엘니도라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정도… 이것도 윤도현 광팬이나 되어야 알고있는...
공부를 시작했다.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알게된 복잡한 상품의 유통구조가 닿아있지 않은 곳은 별로 없었다. 한국인들에게 많이 소개된 곳일수록 그런 유통구조가 더 심하게 얽혀 있는 곳일 확률이 높다. 우리에게 유명하다는 건, 거길 다루는 여행사가 많다는 것이거나 큰 여행사가 중점적으로 홍보를 했다는 뜻이니까.

팔라완을 본격적으로 팔고 있는 여행사는 별로 없었다. 사실 공부를 할수록 그럴 수 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 직항 항공편이 없다. 인천, 제주, 부산 등 대표적인 국제공항에서 팔라완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 7,000개가 넘는 필리핀의 특징상, 중앙 정부의 행정 장악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팔라완도 반군지역이 장악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두가지만으로도 업계에서는 크게 흥미를 가질 곳은 아닐 듯 보이긴 했다. (물론 팔라완 남부가 반군이 장악했고 중앙 정부의 통재력이 완벽하지 않은 건 맞지만, 실제 겪어보니 그 외 지역은 전혀 그런 걸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때묻지 않은 시골 사람들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곳이었지만…)
<필리핀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라는 수식어는 오히려 그만큼 여행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실상이 어떤지 눈으로 보고 최종 판단을 해 보기로 했다. 모르면 용감한지라...

이번 "팔라완 답사"는 이런 배경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대마도처럼 괜히 돈만 쓰고 올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 소문만으로 업계의 추이만으로 판단하는 건 아니라는 원칙에 따르기로 했다.

드디어 탑승이 시작되었다.


이미 완연한 밤, 활주로 저 멀리 우리를 마닐라로 싣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기체를 향해...
맨땅에 헤딩하기 위해서... 하프라인부터 오버래핑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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