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은 겨울 성수기가 되면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날 정도로 관광산업이 거의 전부라 봐도 무방한 곳이다.
이렇게 뜨내기 손님들을 상대하는 식당, 기념품 등의 가게 주인과 점원들은 대개 때때모찌일 가능성이 많다. 안 좋게 표현하면 닳고 달은 느낌...
그러나 하이난에서도 최고 번화한 도회지인 싼야 사람들, 최소한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 없었다. 순박을 넘어 정이 참 많달까?
더운 지방 사람들은 행동이 느리기 마련, 더구나 해산물, 과일 등이 지천으로 널린 이런 풍요로운 조건에 사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낙천적이고 태평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그들과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지내는 동안 여러번 마주치면서 느꼈던 따뜻한 마음이...
어딜 가나 사람에 반해서 그 도시가 더욱 더 짠하게 깊이 남게 되는 게 아닐까... 우리가 그 동안 다녔던 수많은 여행지에선 어떻게 하면, 삥 뜯기지 않고^^ 더 많은 걸 얻어낼 것인가를 두고 신경을 곤두세웠던 전쟁터 같은 곳들이 아니었을까?
어디든 좀더 여유있게 생활이 되어버리면 그들은 이웃사촌으로 바뀐다.
비록 중국인들의 꽌시 공동체로까지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진심을 느낄 수 있게 되었던 시간들.
가장 자주 마주치는 하이난 원주민들은 역시 식당 아주머니들이었다.
여행기간 : 2017.11.4~12.31 (2개월)
작성일 : 2018.6.18
동행 : 홀로
여행컨셉 : 해외 파견
내가 하이난에 오기전에 점심은 주로 사무실에서 시켜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과 강렬한 태양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침 일찍 15층 빌딩에 들어가서는, 밤이 어둑해야 건물을 나서는 생활의 연속.
나는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점심식사만이라도 밖에 나가서 먹자고, 그런 여유와 생활 속의 소확행도 없는 꿀꿀한 생활은 거부한다고^^
결국 점심 때가 다가오면 동생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행님의 중국음식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메뉴 선정이 늘 고민이었던 듯.
촉일촉이 우육면 식당
처음으로 점심을 밖으로 나가서 먹었던 곳이 우육면(牛肉面, 니우러우미엔) 가게였던 것 같다.
중국사람들 고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이 아니니까^^ 면 요리에도 소고기는 필수~
간판에 "촉일촉이" 라 적혀있는데, 체인점이란다.
"数一数二(슈이슈얼)"이라는 4자성어가 있는데, 그 뜻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게 최고다. 1, 2등을 다툰다' 뭐 이런 비슷한 거라고...
근데 이 발음이 같은 "蜀一 蜀二" 로 음식점 체인을 만들었단다. 일종의 언어유희라는데, 중국에선 유행이란다. 설명을 듣고보니 작명에 깃든 재치가 대단하다.
"蜀"은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바로 그 촉국을 의미한다. 그 땅이 지금의 사천성 인근.
"蜀一 蜀二"라는 조어로, 발음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우수한 맛이라는 자랑질^^을 하고 있고,
우육면의 고향, 사천 정통 우육면 맛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카운터에 있던 주인장 아주머니는 우리 테이블에서 들리는 한국어를 귀담아 듣더니, 그 뒤로 나만 들어가면 가볍게 웃으며 목례를 하신다. 그리고는 "한궈런"이라고 주문한 음식에서 샹차이를 빼고 내오라고 직원에게 지시를 해 주셨다. ㅋㅋ
몇몇 단어만 알아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집. 맛도 물론 좋았다.
까이판(盖饭, 덮밥) 집
행님, 오늘은 뭘 좀 드셔 볼랍니까?
사무실을 나오면 싼야에서 가장 큰 가로 세로 도로(봉황로와 영빈로)가 만나는 교차로다.
점심시간마다 이곳을 건너 식당으로 향하는데, 늘 도보 행인보다 전동 스쿠터가 더 많다. 하이난이 관광지지만 또한 세상 여느 곳과 같이 생활인들이 사는, 사무직원들이 점심시간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비슷비슷한 곳이다.
아마, 하이난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갔던 가게가 아닐까 싶은 곳이 바로 덮밥집.
'위샹스러우까이판(鱼香丝肉盖饭, 물고기 향이나는 잘게 썬 고기 덮밥?)'은 처음 먹었던 덮밥이다.
물고기향이 나는 채썬 고기 덮밥? 뭐 대충 그런 뜻인 듯 하다.
물고기 향은 잘 모르겠지만, 맛있다.^^
이집 덮밥은 다 맛있었다.
처음엔 벽에 걸린 메뉴에 전부 한자만 달려있었는데, 어느날 이렇게 한자 앞에 영어가 붙어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와서는, 동생들한테 하나하나 메뉴 설명을 물어보는 모습을 보고 잘 모르는 영어를 일일이 찾아서 수기로 달았단다.
꼭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건 아니었겠지만, 감동도 이런 감동이...
실제로 중국인들 중에서 엘리트층이 아니면 영어를 거의 모른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식당 주인장이 하나하나 인터넷을 찾아서 영문표기를 했다는 건 정말 지극 정성이다.
한결같이 저런 캡모자를 쓰고, 전혀 꾸미지 않은 태도와 말투로 늘 미소만 던지던 아주머니,
한 번은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정말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하기도...
떠날 날이 다가와서 어쩌면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르겠다며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저렇게 부끄러운 미소를 지어주신다.
싼야베이에서도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관광객이 찾을 리 없는 작은 식당 아주머니는 메뉴까지 영문으로 표기해 뒀는데... 나 이후에도 영어권, 한글권^^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기를 바란다.
마지막 식사라는 말을 통역해 준 동생이 이런 걸 들고 왔다.
파는 건데, 아주머니가 먹으라고 주시더란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먹먹하니 참...
다시 아주머니 사진을 보니... 보고싶군^^
썅핀지에의 연길냉면
또 한 분 절대 잊을 수 없는 분은 연길 출신의 조선족 아주머니.
그리고 이집의 냉면은 하이난 최고라고 감히 평가해 본다.
하이난이 참 더운 곳인데도 이렇다하게 찬음식을 취급하는 곳이 별로 없다. 중국분들은 음식을 차게 먹지 않는다. 특히 더워서 몸이 허해 질 수 있으니, 더더욱 더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생각하는 하이난사람들.
제대로된 냉면 한 그릇을 맛볼거라고 물어서 샹핀지에까지 차를 타고 가서 먹었다.
근데 시원한 동치미 국물맛의 이 냉면은 하이난에서 최고가 아니라 지금까지 먹어 본 냉면 중에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맛이었다.
천편일률적으로 육수만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조선족들의 냉면은 살짝 새콤달콤한 동치미 국물을 내 오는데, 어릴때 할머니가 해 주신 맛과 비슷한...
함께 시킨 탕수육(꿔바러우)도 기가 막힌 맛^^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정말 옆집 아주머니처럼 살뜰히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데...
그 다음에 다시 갔을 때는 식구들 먹으려고 튀긴 거라며 주문하지도 않은 명태껍질 튀김을 내 주신다.
첨 먹어보는 건데, 바싹하면서 짭조름한 게 맥주 안주로는 그만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한국 관광객들이 샹핀지에까지 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맛 변치 마시고 잘 지켜주시길 바래요~"
사무실 근처 "명동식당"
우연히 지나다 한글로 "명동식당"이라는 간판을 봤다.
들어가 보니, 역시나 조선족 아주머니가 주인장이데, 돌솥밥이 예술^^ 그냥 우리 동네에서 늘 먹던 점심 같다.
못 생긴 사람 찍어서 뭐 하게 하시며, 수줍게 웃어주는 아주머니의 순박한 모습이 아직 생생...
하이난에서 갈치구이라니...
곧 아들네가 올거라고 지져 놓은 건데... 하시며 많이 못 드리니 맛만 봐라신다.^^
이곳도 역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날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주신다.
때마침 며느리와 함께 만두를 빚고 계셨는데, 그냥 인사차,
'아, 집만두 맛있겠다' 했더니,
식사하는 사이, 어느새 쪄서는 한 접시 내 오시며
'입에 맞을란가 모르겠는데, 잡숴봐요~'
ㅎㅎㅎㅎ.
어릴때,
지구 반대편이라고 배웠던 아르헨티나의 내 또래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혹시 나처럼 지구 반대편에 한국이 있다고 배운 어떤 꼬마친구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뭐, 이런 실데없는^^ 생각을…
그렇게 각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그게 어느 나라의 어느 거리일지는 몰라도 다 큰 성인이 되어 우연히 스치고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살면서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잠시 있게 되는 사람들, 그 사람과 짧지만 마음을 나누는 기회가 생긴다는 건, 요즘 유행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하이난은 그냥 따뜻한 낙원이었는데,
어쩌다 생의 한 부분을 잘라 짧은 생활을 해야하는 출장지였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잘 아는 지인들이 살고 있는, 보고싶은 얼굴들이 살고 있는 고장이 되어버렸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는 매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했던 동생들이지만, 그 못지않게 이런 소중한 인연들도 포함된다.
다들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실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보고싶은 얼굴들, 하이난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