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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와 조카
지율이에겐 이모가 있다. 그러니까 아내에게는 두 살 나이가 많은 언니가 있다. 아내의 언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으니, 30대 초반에 어린 학부모가 되었다.
시대별로 결혼하는 연령대가 다르다고들 말한다. 내가 결혼한 2010년 즈음만 해도, 사람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을 많이 했다. 그리고 2019년의 지금에는 30대 중반이 되어도 결혼을 많이 한다. 결혼을 언제 하는 지보다, 철이 언제쯤 드는 가를 떠올린다.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도 아이였다.
아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양하게 쓰일 수 있으나, 이때의 ‘아이’는, 주장만을 내세우고,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진리인 줄 아는 사람. 나의 서른은 그러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른이란 나이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알아갈 나이. 적어도 ‘모성(母性)과 희생’이 주가 되기에는 어린 나이임에 분명하다.
32세에 처형은 학부모가 되었다. 처형의 아들 경완이는 나와 유사했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한다. 자신이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라고 생각해서인지, 일정한 거리 안으로 사람들과 같이 서 있지를 못했다. 욕심이나 욕구가 크지 않아,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느 아들이, 엄마에게 쉬울까마는, 나이 어린 처형에게, 경완이는 대하기 어려운, 쉽지 않은 아들이었다. 경완이는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의 트러블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경완이가 여기서 학교 다니기 힘든 것 같아. 내가 봐도 애들이 좀 못됐어.”
“그런데 초등학교는 이사를 해야,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경기도 광명 쪽을 알아봤어.”
“광명? 그쪽은 괜찮겠다. 지금 집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도 아니고. 엄마 집이나 우리 집이랑 그렇게 멀지 않고. 집을 알아봐야겠네.”
“벌써 알아봤지. ㅎㅎ 광명에 새로 지은 복층 집이 나왔어. 옥상도 있다.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어. 따로 캠핑이나 여행을 갈 필요가 없는 거지.”
“아이고. 이 상황에서 고기 구워 먹을 생각이 나.”
“그럼. 얼마나 좋아. 경완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우리는 옥상에서 여유롭게 고기 구워 먹고. 일석이조 아니니?”
“그래. 좋기도 하겠수.”
아내와 처형은 이사 문제로, 전학 문제로 논의를 했지만, 결론은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였다.
몇 달 후,
“언니, 집이 왜 이래? 온통 난리네. 무슨 일 있어?”
“야. 조용히 해. 지금 경완이 친구들 와 있어.”
“아니, 친구들이라고 해도 완전 시끄럽고, 엉망이잖아.”
“친구들이 매일 오니? 어쩌다 와서 떠들 수도 있지. 일단 위에서 놀라고 했는데, 아랫집까지는 들리지 않을 거야.”
“그래도 좀 조용히 놀라고, 실내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냐?”
“야. 됐어. 경완이가 친구가 생겼잖아, 그리고 집엘 데려왔어. 놀랍지 않아. 난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난다. 조용히는 무슨, 더 떠들라 그래.”
처형은 해가 지날수록 너그러워지고, 긍정적이 되어 간다. 아니, 원체 따뜻한 분이었다. 지율이가 8살이 되었을 때, 경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꽤나 나이 터울이 있는 까칠한 고등학생과 천둥벌거숭이 초등학생은 친하다. 경완이는 조용하고 낯을 가렸다. 다른 사람에게 쉬이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어린 지율이에게는 마음을 쓰고 같이 놀아준다.
형의 옷을 물려 입었고, 형의 장난감을 받았다. 형의 장난감은 레고와 자동차, 총과 보드 게임이 많았다. 고등학생 형이 보기에,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노는 어린 동생이 귀여웠나 보다. 처형도 아내도 그런 경완이를 보며 놀라워했다.
캐치볼
아내와 즐기는 소소한 취미 중의 하나는 야구 중계를 함께 보는 일. 지율이와도 어린 시기부터 시즌 중에 고척돔을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갔다. 아내가 근무 중이거나, 지율이가 일정이 없을 때,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고 체력이 남아있을 때, 야구장을 찾곤 했다. 처음 지율이와 야구장을 간 나이는 5살이었다. 5살 지율이는 가만히 앉아 있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3이닝 만에 야구장을 나섰다. 집에 가겠다며 떼를 쓰며 시끄러워지는 아이를 두고, 야구에 집중하며 관람하고 있는 주변의 관중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있을 수 없었다.
6살이 되니, 5이닝을 견뎌냈고, 7살에는 거의 6이닝을 버텼다. 야구장을 가지 않는 날은, 매일 밤 18:30분 야구를 시청했다. 자주 야구 경기를 보아서인지, 지율이는 여덟 살이지만 스트라이크와 볼, 파울과 안타, 아웃과 공수 교대 정도를 안다. 어느 날 지율이가 야구 글러브를 사 달라 말한다. 야구가 더 좋아진 것이 아니라 반 친구 중에 야구를 하는 녀석이 있었나 보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어 하는 아이.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모는 지율이를 좋아한다. 경완이는 남들이 무엇을 하든 관심이 없는 아이여서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지율이는 하고 싶은 바가 많았고, 요구도 많았다. 그런 지율이를 이모는 무척 좋아한다. 혼자 생각에 처형은 지율이처럼 까불고 하고 싶은 게 많고, 활동적인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야구 글러브를 사기 전에,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경완이가 쓰던 글러브가 있느냐고. 이모는 글러브는 없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움직이기 싫어하는 경완이에게 운동 도구를 물어보다니, 생각이 짧았다. 며칠 후 이모로부터 갑자기 선물이 왔다. 글러브와 야구공,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 세트였다.
자매들의 경우 조카가 남같이 여겨지지 않는다던데, 실제로 처형과 아내는, 경완이와 지율이에게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고등학교 경완이의 진학 지도를 한다. 물론 경완이가 반가워할지는 의문이지만, 이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처형은 8살 조카와 코딩 게임 등의 보드 게임을 한다. 두 자매는 각자가 전할 수 있는 행동으로, 조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지율이는 글러브를 보자마자 바로 놀이터로 가자고 떼를 썼다. 테니스공을 가지고 나갈까를 고민하다가, 볼을 잡을 때의 소리와 감촉이 전혀 다름을 알기에, 야구공을 가지고 나간다. 놀이터 옆의 공터로 간다. 아무래도 처음 공을 주고받을 때에는 지율이가 공을 뒤로 놓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지율아, 공을 잡을 때는, 글러브 끝으로 받아야 해. 손바닥 쪽이 아니라. 그리고 공이 위로 올 때에는...”
“알았어. 알았어. 그냥 던져.”
뭔가 시작부터 빈정이 상하는 느낌이다. 애써 친절히 설명해 주려 했지만, 아이는 그저 던지고 받기를 시작하고 싶어 했다. 이 상황에서 더 설명하려고 시도해보았자, 아이는 짜증을 낼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앞두고, 다른 일이 끼어드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캐치볼 전의 설명은 녀석에게 ‘불필요한 상황’이다.
캐치볼 전에, 설명을 들으면 더 안정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는 나와 같이 조급함을 기본 성격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말해 보아야 듣지도 않고, 도리어 계속 짜증을 낼 터이다. 결국 운동을 실제로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알아가야 하는 스타일의 아이.
“지율아, 공이 위로 날라 오면, 다리를 공이 오는 쪽으로 움직여서, 머리 위로 손을 들어 글러브에 닿는 순간 손을 오므리는 거야.”
“알았어. 빨리 던져.”
“음... 지율아, 존댓말.”
“알았어요. 던져요.”
아이에게 살짝 치밀어 오른 화에 대한 반응이, 나이 많음을 이유로 존댓말을 하라고 말해 버렸다. 자주 그런다. 지율이가 버릇이 없어지는 듯하면, 존댓말을 하라고 말한다. 그럼 버릇없이 말하는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이랄까. 실은 내가 유치함을 가진 어른이라서다. 조곤조곤 불러서 왜 조급함을 느끼는지 들어주고, 조급함이 살아가면서 썩 좋은 것이 아님을 설명하면 좋을 것이다.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설명하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지율아, 존댓말’이라는 다소 억압적인 수단으로,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강제하려고 한다.
“삶을 살아갈 때에는 급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한 걸음 뒤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게 좋아. 말을 할 때에도, 즉각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는 것보다는 한 번은 머릿속에서 여과를, 필터링을, 그러니까 생각을 한 다음에 말하는 게 좋아. 그럼 실수할 일이 줄어들거든. 빠르게 달려 나갈 때에는 걸려 넘어질 확률이 높으니까, 자신이 달릴 길을 미리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이야. 길 가운데 돌멩이가 있는 건 아닌지, 길이 직선인지 곡선인지 정도는 파악하는 게 좋아. 그럼 넘어질 가능성이 낮아질 거야.”
말을 해 보지만, 의미 없다. 결국 ‘권지율, 어른에게는 존댓말’이라는 단호함이 지율에게는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전히 내가 하는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대체로 온화하고 친구와 같던 아빠가 명확하고 단호하게 말할 때, 귀에 쏙 들어가기 때문인지. 그리하여 ‘어른에겐 존댓말’이란 말은 전가의 보도처럼 지율에게 사용될 때가 많다.
“자 날아간다. 받아.”
윽. 놓쳤다. 너무 높게 던졌을까. 조금 더 낮게 던져야겠다.
“아빠, 너무 높이 던졌잖아.”
“다른 사람 탓하면 안 돼. 배드민턴이든 캐치볼이든 완벽하게 네 앞에 오는 공은 없어. 아까 말했지만 자신의 발을 움직여서 공을 잘 받으려고 노력해야 해. 공이 오는 방향을 보고, 발을 움직여서 공이 몸 가운데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그다음에 글러브로 공을 받는 거지. 공을 받을 때에는 공에서 눈을 끝까지 떼지 말고, 글러브를 오므리는 거야.”
내가 제대로 못 던진 것을 지율이가 발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 이야기한다. 내가 잘 못 던진 것도 맞고, 지율이가 오는 공에 따라 발을 움직여야 함도 맞다. 이왕이면 지율이가 배울 만한 내용으로 말하는 게 좋으니까.
“아~ 알았어. 알았어.”
지율이가 던졌다. 이 녀석이 일부러 아빠가 받기 어렵게 멀리 던지나.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까. 운동을 제법 하니까, 빠르게 움직여 점프해서 받았다.
“아빠, 멋지냐?”
“치. 어떻게 받았지? 아빠 잘한다.”
“자 받아.”
“응.”
윽. 또 뒤로 흘린다. 이번에는 잘 던져 주었는데. 첫 캐치볼이니 뒤로 많이 흘릴 것이다. 그 흘릴 때마다 아이가 기분 나빠하거나 지치지 않아야 할 텐데, 처음에는 누구나 잘하지 못한다. 잘 못함을 인정해야 연습을 할 수 있다. 많은 연습을 거쳐야 비로소 어느 정도 잘함에 이른다. 그러니 지율이가 처음 자신이 잘하지 못함을 인정하면 좋겠다.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이 날아온다. 그리고 놓쳤다.
“아빠도 못 받는구만.”
“지율아, 캐치볼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보고 있지 않으면, 미리 ‘던진다’는 말을 해 주어야 해. 그래야 상대방이 공을 던지는구나를 알고 집중하지. 안 그러면 공을 받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거든. 이것도 중요한 거야.”
“네. 네. 너무 중요한 게 많은 거 아냐.”
경완이는 섬세하여, 날아오는 공에 민감했다. 자신의 정면으로 쉽게 오는 공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반대로 강하거나 약하게, 본인이 잡기에 멀리 혹은 짧게 날아오는 공에는 약간의 슬픔을 가지고 바라본 것 같다. 상대방은 ‘어쩌다’ 강하거나 약하게, 혹은 짧게 던진 것임에도, ‘고의로’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아픔을 느꼈다.
공을 던진다는 건
경완이가 왜 캐치볼을 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캐치볼이다. 말을 주고받을 때, 마음을 주고받을 때, 상대방을 바라보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방향을 예측하고, 손을 보면서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본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들어야 한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당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있음을 알려 준다. 그럼 상대방은 나에게 공을 던지는데, 못 받게 던지는 공이 아니라면, 살짝만 위치를 이동하여도 공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대화를 하고 있는 당신의 말이 나를 아프게 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닐 것이다. 당신의 의도를 선함이라고 전제한다면, 마음을 편히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상대가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공을 던진다고 전제하지 말자. 나 역시 말을 함께 있어, 선함을 전제하여 던진다. 그리하면 누구와라도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다.
지율이는 아빠가 집중하지 않으면, ‘아빠, 던진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이 오는 방향으로 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공을 끝까지 보고 공을 잡는다. 야구공은 단단하다. 혹시 앞으로 오는 공을 잡지 못하면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몸에 공이 닿으면 아프다. 몸이 고생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바라봐야 한다.
공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한 캐치볼이 10M, 20M 먼 거리에서도 가능함을 알게 된다. 약하게, 받기 쉽게 던지다가도, 공을 멀리서 힘차게 던질 수 있음을, 그 공 역시 상대방이 잘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멀리, 힘차게 던진 캐치볼을 잡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지율아. 우리 또 캐치볼 하자. 캐치볼 재미있거든. 너와 이리 노는 것이, 대화하는 것이 즐겁거든.”
아마 우리는 내일도 캐치볼을 하러 나올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친구들을 부르는 모습으로 보아, 경완이도 지금은 캐치볼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