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풍경

2

by 권지해

지율이와 지아는 22:00시 즈음에 잠들어서, 8시 전후에 잠을 깬다. 두 녀석 다, 갓난아기 때부터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약 10시간 정도 잠든다. 나는 밤 귀가 밝지 않다. 주변의 뒤척거림이 있다 하여도 잠을 깨지 않는다. 아기들은 어쨌든 새벽에 수유를 해야 하니, 아내는 중간에 깨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유를 한다고 아내가 나를 깨우지는 않았으니, 나는 밤새 잠을 잤다. 그러다 아내의 출산 휴가가 끝나면서, 자연스레 모유 수유를 그만두었다.


아내가 사회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피곤한 상태로 잠들었고, 이후 중간에 깨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아기들은 새벽에 깨어 울었을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 놀아 달라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 아빠 둘 다 피곤하여 깨지 않으니, 어두운 가운데 하는 일 없이 결국 다시 잠이 들었겠다. 그러다 어린이집에 가서, 낮잠을 잘 시간이 되면, 꿀잠을 잔다. 새벽에 깨어보았자, 엄마 아빠는 깨어날 일이 없으니, 결국 밤에 잠을 자는 일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몇 번 패턴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지아와 지율은 지금도 밤새 10시간 이상 잠을 잔다. 어쨌든, 낮과 밤이 바뀐 아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복 받았다 여긴다. 이 패턴은 4살, 8살이 되어도 바뀌지 않았다. 지율이가 먼저 깬다. 휴일일 경우 6시 30분, 혹은 7시에 깰 때도 있지만 학교를 가는 날 만큼은 8시 정도에 눈을 뜬다. 휴일은 아침 일찍 눈을 떠서 강아지와 놀거나 산책을 나가자고 조른다. 아빠가 끝까지 눈을 뜨지 않으면, 혼자서 1시간가량 빈둥거리며 논다. 학교를 가는 날은 아무리 빨라도 8시에 잠에서 깬다. 먼저 일어나는 일은 없고, 도리어 8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으려 할 때가 많다. 어른들만 회사를 가기 싫어, ‘5분만 더’를 외치는 건 아니다. 결국 마음의 이끌림으로 인간의 몸은 움직인다. 지율이에게는 노는 것 1등, 자는 것 2등, 학교 가는 것 3등의 순인 것 같다. 그에 따라 지율이 스스로 기상시간을 선택하고 있다.


“빨리 밥 먹자.”

“네. 먹어요. 뭉치. 이리 와.”

밥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식탁 의자에 뭉치를 데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고, 코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식탁에 앉은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


강화도 할머니 집에서 키우던 장모 치와와 종의 뭉치를 데려왔다. 지율이와 지아가 강화도에서 뭉치를 발견하고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만약 강화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더라면 할머니는 손을 떼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3개월이 된 뭉치를 두 남매에게 빼앗겼다. 물론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건 남매이지만, 키우는 건 아빠다. 밥을 먹이고, 응가를 치우고, 산책을 데리고 나간다.


강화도 할머니는 뭉치를 빼앗기고 몇 달이 지나서 외로우셨는지, 새로운 장모 치와와 ‘뭉돌’이를 데려다 키운다. 문제는 두 남매가 다시 뭉돌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 하지만 두 마리는 절대. 절대. 절대 안 된다고 미리 엄포를 놓았다. 한 마리의 응가에도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응가를 싸면 바로 치우는 게 편하다. 시간이 흐르면 냄새가 흐르고, 혹 패드가 아닌 곳에 배설하면 실수로 밟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니 배설하면 바로 치운다. 휴지로 배설물을 집을 때, 손에 퍼져나가는 온기는 살짝 거북하다. 그런데 두 마리를 키우자고. 두 마리의 응가라니. 상상할 수 없다.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우면서, 밥을 먹고 있지 않는 지율이가 보였다. 혹 뭉치가 없다면 아침밥을 더 빨리 먹을 수 있을까. 혹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이유가 뭉치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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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빨리 드셔야죠. 이제 시간이 없어.”

“응. 아빠, 내가 노래 하나 가르쳐줄까. 저기 높이 날아, 번개처럼 빠르게.”

“아니야. 아빠는 노래 배우고 싶지 않아. 아빠는 음치거든. 그리고 지금은 노래를 가르쳐 줄 때가 아니라 밥을 먹을 때거든요.”


사람 입은 하나뿐이다. 밥을 먹고 있으면 말을 하기 불편하다. 반대로 말을 이어하고 있다면, 밥을 먹을 수 없다. 지율이는 말을 하고 있으니 밥을 먹고 있지 않은 거다. 녀석의 입에 밥이 있다면, 저리 명확한 발음으로 대화를 할 수는 없다.


“지율아, 학교 갈 시간이 10분 남았어. 5분 후에는 밥을 다 먹지 않아도 치울 거야.”

“칫. 알았어. 아빠는 맨날 밥 치운대. 맨날 5분 남았대. 알았어.”

“어쩔 수 없어. 학교 등교 시간은 정해져 있는 거니까. 앞으로 5분이다.”

5분 동안 물을 묻혀, 지율이의 떠 있는 머리카락을 가라앉힌다. 몇 번을 반복해서 머리를 정돈한다. 옷을 꺼내 입기 쉬운 위치에 놓아둔다. 그리고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확인한다. 5분이 다 되어 가지만 지율의 그릇에는 여전히 밥이 남아 있다.


지율은 화곡동 할머니나 강화도 할머니에게는 귀한 손자. 어릴 때는 물론이고, 8살이 된 지금도 두 분은 밥을 먹여 주신다. ‘먹여주다’의 피동 표현 뜻 그대로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얹어, 아이 입에 넣어 주신다. 지금도 화곡동 할머니 집에 가거나, 강화도 할머니 집에 가면, 지율은 밥 먹을 때, 식탁에 앉지 않는다. 여기저기 마음껏 왔다 갔다 논다. 그럼 할머니들은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한데 섞어서 놀고 있는 아이 입에 갖다 넣어 주신다.


“지율. 너 학교에서는 혼자 잘 먹잖아. 이리 와서 네가 숟가락으로 먹어.”

“그런데 여기는 학교가 아니잖아.”

“네가 안 먹으니까 할머니가 밥을 먹여 주시는 거잖아. 너 애기야?”

“응. 나 애기야.”

“권지율. 빨리 와라.”

“그만 해라. 학교에서는 혼자 먹는데, 할미가 먹여주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 거라고. 내버려 둬라.”

“엄마. 그러니까 아이가 버릇없어지는 거예요.”

“너도 에미가 다 밥 먹여 키웠는데.”

엄마는 괜히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어릴 때 버릇없었다 하더라도, 권지율까지 버릇없이 키워야 한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것 봐. 아빠도 어릴 때에는 할머니가 밥을 먹여주었다잖아.”

“아니거든요. 안 그랬거든요. 그런 기억 안 나거든요.”

“아빠는 불리하면 기억 안 난대.”

“자. 빨리 앉아. 권지율.”

“됐다. 됐다. 니는 신경 끄고 밥이나 먹어라. 애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께.”


아침에 밥을 먹고 있지 않은 아이를 보면서,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지율이가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이유를 엄마와 장모님의 탓인지 생각해본다. 그러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 밥 먹여주는 어르신들을 탓하다니. 나이 40이 되어도 남 탓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아직도 엄마 탓을 하는구나. 부끄러워졌다. 지율은 결국 밥을 다 먹지 못했고,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간다. 지아가 있기 때문에 현관문에서 인사한다.


“지율아. 잘 다녀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네. 학교 다녀올게요.”

드디어 한 녀석을 보냈다. 이제 지아만 보내자. 그런데. 띡띡띡띡

“아빠, 실내화 주머니.”

“아! 실내화 주머니 여기 있어.”

“응. 갔다 올게.”


지율이가 다시 들어와, 두고 갔던 실내화 주머니를 찾는다. 실내화 주머니를 들려 보내고는,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준비물을 학교에 가져가지 않은 후, 왜 엄마가 챙겨주지 않았느냐고 짜증을 냈다. 학교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주체는 나임에도 엄마에게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났다. 갑자기 울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지율이가 고마웠다. 지율이는 실내화 주머니를 가져갔을 뿐, ‘왜 아빠 안 줬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 탓을 하지 않는 아이. 그저 상황이 있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이.


난 오늘 아침도 남의 탓을 했다. 지율이가 아침밥을 먹지 않는 이유가 뭉치 때문은 아니었는지. 할머니들 때문은 아닌가를 의심했다. 의문이 아니라 뭉치나 할머니들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초창기 회사 일이 떠올랐다.

“권지해씨, 기안에 쓰인 서식이 좀 다르네요. 회사 공용 서식을 써야 해요.”

“예. 그런데 팀장님, 꼭 같은 서식을 써야 하는 겁니까.”

“뭐, 권지해씨 서식이 보기 좋지만, 회사에서는 통일된 서식이 있거든요. 기안 다시 올려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기안’을 다시 올리라는 말을 들으면, ‘예’하고서는, ‘뭐가 문제인 거야. 까탈스럽기는’이라고 생각했다. 기안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기안을 처리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남의 탓을 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을 귀찮게 하다니. 서식이 보기에 편하면, 똑같은 것이 아닌가라고. 그러다 연차가 쌓이면서, 회사 공용의 서식이 필요하구나. 그게 더 효율적이구나를 생각한다. 당시 팀장님은 말씀을 친절하게 해 주신 거구 나라며 고마움까지 느낀다. 지율이가 버릇없이 말하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아이를 무척이나 편하게, 무조건 아이 편의를 보아주어서 말버릇이 없는 거야’라며 은연중에 아내 탓을 했다.


모든 행위의 인과 관계는 앞의 사건과 연관 지으면 충분하다. 사건과 관련 없는, 먼 이전의 일 혹은 그 사람의 성격 등과 사건을 연결시키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전(全) 삶을 가지고 해당 사건을 판단해선 안 된다. 지율이가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이유는, 기상 후 잠에서 깨기도 전에 밥을 억지로 먹기 때문이다. 밥 먹는 시간 자체가 15분 정도로 짧아서이기도 하다.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밥을 먹으니, 밥맛이 없고, 짧은 시간 안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으니, 더욱 밥을 먹기 싫을 게다.


조금 더 일찍 깨우면 밥을 잘 먹을 수 있다. 아침밥의 반찬을 녀석이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해도 된다. 저녁은 가만히 앉아서 천천히 잘 먹는다. 아침 역시 아빠가 앉아서 같이 먹으면 잘 먹을 수 있다. 아빠가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머리에 묻히고, 가방을 챙기고 있으니, 밥 먹을 분위기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아빠가 모든 준비를 미리 끝내고, 밥을 먹는 동안 같이 앉아 눈을 맞추며 밥을 함께 먹으면 좋을 터이다.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남 탓을 하게 된다. 동시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비교까지 한다. ‘지아는 가만히 앉아서 잘 먹는데, 왜 지율이는 왔다 갔다, 느리게 먹는 거야’라며 아이를 키우며 하지 말아야 할 비교를 한다.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다’라는 사건만 인지하면 된다. 그 일이 왜 잘 되지 않는지, 무슨 원인으로 어떻게 일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앞 뒤 상관관계를 파악하면, 일이 해결될 방법이 나타난다. 괜스레 남 탓을 할 일도 없으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성격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럴 때 다른 이와 비교도 안 하게 된다.


지율이를 학교에 보낸 후, 지아에게 밥을 천천히 먹였다. 옷을 입히고,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게 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날은 맑음. 볕은 따뜻하고, 나무 그늘 아래는 시원하다. 지아 손을 잡으며 노래를 부르며 걸어간다. 지율이에게 진짜 미안한 건, 지율이를 통해 배우면, 혜택은 지아가 본다는 것. 지아에겐 조금 더 여유 있게 밥을 먹이고, 사소한 일에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화낼 일도 없다. 오늘 하루 지율이에게 칭찬 하나는 꼭 해야겠다. 미운 말, 버릇없는 말을 하더라도 미워하지 말아야지. 오늘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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