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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진 Dec 29. 2021

바다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_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양살이를 하면서 서핑 이야기를 많이 그렸지만 나는 서핑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보드 위에서 서있는 시간보다 월등히 많다. 10번의 파도가 오면 한 두 번 겨우 일어설까 말까 하는 서린이라고나 할까. 서핑을 잘 못하지만 너그러운 이야기꾼 바다는 나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 초보자로서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파도가 올라오는 라인업부터 해안가까지 롱 라이딩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럽던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서핑보드를 튜브 삼아 둥둥 떠서는 속으로 '우와, 우와'를 연신 외친다. 파도가 좋은 바다에 가면 참 많은 서퍼들이 파도를 타기 위해서 그 안에 들어간다. 내가 유난히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바로 파도를 향해 나아가는 서퍼들의 모습. 나에게 파도는 꼭 역경처럼 느껴졌어서 그들을 보며 왠지 모를 감동을 느끼곤 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파도에 맞아서 오히려 가던 곳보다 더 멀리 밀리고 물도 먹으며 크고 작은 시련을 맞았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퍼가 해야 하는 일은 다시금 정신 차리고 기꺼이 들어가는 것. 다시 한번. 다시 한 번하면서.


 파도로 향하는 그 순간이 꼭 인생의 축약본 같기도 하다. 마음먹고 나아가다가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오히려 시작점보다 더 멀리 밀려나가기도 하며 시험에 드는 순간. 그렇게 좌절을 맛보게 되면 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만 느껴져서 그냥 이 안에 잠겨있고만 싶다. 하지만 파도를 향하는 서퍼들의 긍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시 한번 나아가 보면 어떨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더라도 다음번에는 요령이 생겨서 더 잘 가게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요령껏 간 그곳에서 아주 맛있는 파도를 타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러한 기대감과 희망이 우리에게 한번 더 잘 살아보고 싶게 하는 거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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