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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진 Jul 06. 2022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을 주세요.

낙산사

 2021년 하반기는 나에게 너무나 잔인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픈 마음을 꾹 참고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이며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고 할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제서야 마음에도 긴장이 풀려 울었고 집에 도착해서는 더 크게 엉엉 울었다. 모든 일이 엉망이었고 특히 내 정신상태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몸도 마음도 모두 상할 것 같아서 도피형태로 강원도 양양에 갔다. 대학동기들과 다녀온 서핑의 기억이 너무 좋았고, 오랜 꿈이었던 게스트하우스 스텝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내가 일했던 게하 근처에는 낙산사가 있었다. 그곳에 지내면서도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새로 들어온 스텝 동생이 어느날 일출을 보고 왔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이 도화선이 되어 이른 아침에 혼자 낙산사를 올랐다.

오르막길의 풀과 나무들, 해가 짧아져 느껴지는 어스름한 아침, 낙산사 입구에 적힌 짧은 글귀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솔직히 아침부터 일어나서 오르는 일이라 힘들기만 했다. 그래도 일출을 보겠다며 게으른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낙산사에서의 일출은 물론 좋았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인데 일출을 볼 때는 더욱이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내가 더 좋았던 건 낙산사 곳곳에 있는 다양한 길(꿈이 이루어지는 길, 행복해지는 길 등)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두꺼비, 그리고 절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가서 욕망을 모두 풀어놓았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완전 잘생기고 멋있는 남자친구 만나게 해주세요. 성공하게 해주세요.' 하면서 욕망의 항아리를 탈탈 털었다. 그런 마음을 털어두는게 좋았는지 낙산사는 내게 위안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 커다란 폭풍이 잦아든 올해, 다시금 낙산사를 찾았다. 몇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큰 변화가 생겨서 바라는 일이 달라졌다. 소원종이에 또박또박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을 주세요, 우리 가족 건강하고 하는 일 모두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적었다.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 어느 것보다도 난 그 마음을 바랐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해도, 내가 그것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무의한 일이고 되려 고통이 될 일이다.


 그 소원을 적고 오니 왠지 내 안에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이 깃든 것 같았다. 요즘도 종종 욕심이 차오를 때면,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릴 때면 조용히 속으로 되내인다.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을 주세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차분히 그 마음에 집중하면 내가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곤 했다. 오늘도 혼자서 그 말들을 되내이다가 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을 주세요.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저도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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