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일곱번째 이야기
어제는 마음이 헛헛해서 집 앞 서점에 갔다. 처음 든 책은 친구가 추천해준 '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 라는 문학동네 시집이었는데 두껍지는 않지만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참을성이 없어서인지 언제 다 읽나 남은 페이지를 계속 확인했다. 어릴 적 다독상을 받으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다음 잠깐 읽고 하루만에 반납하곤 했는데 그 버릇이 아직도 남은 것 같다.
속독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속독을 하며 다독을 하는 사람을 대단하다며 방송에서 소개하기도 하고,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책이 빠르게 읽혀서 빠르게 읽는 것은 개인의 특성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나)에게 이러한 방법이 옳다고 주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세상은 늘 정답인 것 처럼 많은 것을 말하고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고등학생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정답인 것 마냥 읽고 또 읽었었다. 그래서 내가 그 시절을 그렇게 힘들어 했나보다.
나의 주관을 가져야겠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그렇게 볼 수 있는 나만의 눈도, 하나씩 키워나가야겠다.
세상은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나만의 눈을 가져야 한다. -스물아홉 생일 죽기로 결심했다,